어릴 때부터 '동화속의 나라'라는 환상을 가졌던 스위스로 배낭여행을 갔을 때다.
라우터 부루넨이라는 알프스 산자락에 자리잡은 예쁘고 작은 마을을 찾아갔다.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물론 몽블랑을 오르기 위해서였다.
미리 예약한 민박집 '스토키 할머니'네는 스위스의 비싼 물가에 비해 가격도 싸고 푸근한 배낭족들의 인심으로 이름난 집이었다.
도착 직후 허름한 시설을 보고 실망한 탓에 '싼게 비지떡'이란 생각도 했지만 하루를 묵고나서 내 생각이 180도 바뀌는 일이 벌어졌다.
이 집에 함께 묵은 한국여행객은 나를 포함 모두 8명. 저녁에 조촐한 파티를 열자며 의기투합했다.
살인적인 스위스 물가때문에 각자 비상식량을 꺼내 만찬을 벌이기 시작했다.
유난히 한국 관광객이 많았던 날이어서 분위기 좋게 뭉치기도 쉬웠는데 함께 묵고 있던 호주인 2명과 벨기에인 2명도 파티에 가세했다.
각자의 짐에서 나온 음식들은 독일산 와인, 이태리 과자, 스위스에서 막 사온 과일, 그리고 한국의 팩소주까지…. 온갖 나라에서 온 배낭여행족들의 비상식량들로 금세 식탁은 다국적 먹을거리로 그득했다.
외국인들에게 한국 최고의 술이라며 소개를 하곤 소주를 따라주니 감탄을 하며 마셔댄다.
맛도 최고라며 엄지 손가락을 위로 치켜올리는 외국인들이 재밌기도 하고 흐뭇하기도 했다.
그렇게 세계 음식들로 이루어진 멋진 파티를 끝내고 2차로 윷판을 벌였다.
낮에 이미 우리 일행 중 한명이 나뭇가지를 꺾어 윷가락 5개를 만들어 놓았다.
외국인 4명을 포함해 모두 12명이 패를 나눠 게임을 시작했다.
진 팀이 다음날 아침식사와 설거지를 맡기로했다.
유로화가 통용되기전이라 윷 말은 때마침 주머니에 넘쳐나던 각국 동전을 사용했다.
난생 처음 보는 한국 전통놀이에 호기심을 갖고 보던 외국인들에게 중간중간 게임방법을 설명해주면서 흥겹게 게임을 진행했다.
외국인들은 우리가 "도야" "걸이요" "모다!"를 외치며 함성을 질러대자 잔뜩 궁금했는지 뜻을 물어오기도 했다.
외국인들과 뒤섞여 스위스 땅에서 이렇게 즐거운 윷놀이를 하게 되리라곤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하여튼 신이 났다.
한국의 전통문화를 외국인들에게 소개해줄 수 있다는 사실이 이때만큼 자랑스러웠던 적도 없었다.
자연히 민박집 타령은 싹 가시고 없었다.
한달간의 유럽 여행은 고생과 함께 볼거리도 많았지만 지금도 스위스에서의 유쾌한 기분이 생생할만큼 좋은 추억거리가 되었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그곳에서 함께 묵었던 친구들과는 여행후에도 인터넷 동호회를 만들어 연락하고 지내니 여행은 또 다른 좋은 인연을 낳는가보다.
조은정 여행칼럼니스트(http://blog. hanafos.com/eiff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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