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영어발음 잘 하려면

얼마 전 서울의 일부 극성 학부모들이 자녀의 영어 발음을 좋게 하기 위해 혀 수술까지 시킨다는 뉴스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

이는 영어를 잘 하게 만들어야겠다는 과도한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무지의 소산이다.

그만큼 학부모 세대들의 영어 공부 방법에 문제가 많았고, 그로 인해 발음에 대한 일종의 콤플렉스가 강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실제로 자녀의 영어 공부를 처음 시키는 학부모들의 큰 고민은 발음 문제다.

f와p, r과l, th, d, z 등을 구분해서 말한다는 것이 대단히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영어 공부의 시작 단계에서 빚어진 오류다.

알파벳을 먼저 배우고, 문장과 문법을 배우고, 쓰기와 독해에 매달리고, 그러다 보면 정작 영어를 듣거나 말할 기회는 제대로 가져볼 수도 없는 기괴한 어학 공부를 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최근의 학교 영어교육을 살펴보면 과거와는 판이하게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교사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영어를 처음 배우는 3학년 때는 쓰기를 거의 하지 않는다.

듣기 수업이 대부분이다.

어린이들의 귀는 쉽게 열리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듣다 보면 발음이 그리 어렵지 않다고 교사들은 이야기한다.

언어에 대한 사고도 열려 있어서 말을 받아들이는 센스도 어른들보다 오히려 뛰어나다.

교과서에는 그림뿐이다.

수업도 놀이 중심으로 진행되므로 어린이들은 그야말로 놀며 배우는 셈이다.

단어를 알지 못해도, 문장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해도, 무작정 귀로 듣고 입으로 따라 하며 영어에 익숙해지고 있다.

학부모의 그릇된 욕심이 발음을 망치는 경우도 더러 있다고 교사들은 이야기한다.

학원이나 학습지 선택을 잘못 해서 초기에 잘못된 발음 습관이 들면 뒤늦게 이를 바꾸기는 대단히 어렵다.

일부 학부모나 학원 강사는 영어 단어나 문장 밑에 한글로 영어 발음을 적어주기도 하는데 이는 발음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해가 훨씬 크다.

시중에 쏟아져 있는 발음, 이른바 파닉스(phonics) 학습서나 교구들도 반드시 도움이 된다고 할 수는 없다.

한두 가지를 택해 익히게 하는 것은 나쁘지 않지만 여러 가지가 되면 곤란하다.

파닉스를 심도 있게 다룬 책들이 괜찮아 보이지만 분량과 내용이 많아 오히려 영어에 대한 흥미를 떨어뜨릴 수도 있다.

우선은 소리(sound) 중심의 알파벳 학습을 통해 파닉스의 기본적인 규칙 정도만 익히게 하는 것이 좋다.

그 다음부터는 파닉스 규칙이 적용된 문장을 통해 실력을 확장시켜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개 단조로운 파닉스 학습에서 탈피해 자녀에게 새로운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교재나 학습서를 선택한다.

그림과 간단한 문장으로 구성된 스토리 북(영어 동화책)이 대표적이다.

스토리 북은 단어를 많이 모르고 문장의 구조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어도 그림과 소리를 통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때도 학부모가 문장을 읽고 우리말로 번역하는 데만 관심을 기울여서는 안 된다.

책에 딸린 테이프를 들려주는 게 우선이다.

원어민의 발음을 여러 차례 듣다 보면 일부러 외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발음과 문장을 체득할 수 있다.

책을 고를 때는 엄마가 일방적으로 판단해 제공하기보다는 주말쯤 자녀와 함께 서점에 나가 직접 고르게 하는 것도 동기 부여 측면에서 바람직하다.

교사들은 교과서에 딸린 CD만 꾸준히 보고 듣게 해도 상당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한다.

교육청에서 운영하는 에듀넷에도 관련 동영상이나 공부 자료가 넉넉하게 들어 있으므로 활용하면 좋다.

단, 5분이든 10분이든 가능하면 매일 영어를 접할 수 있도록 부모가 자연스럽게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김재경기자 kjk@imaeil.com 도움말:류금숙(대구 죽곡초 교사), 김도경(대구외국어교육협의회)

사진 : 최근의 학교 영어 교육은 듣기 중심으로 놀면서 배울 수 있도록 진행된다. 사진은 수업시간에 낱말카드 놀이를 하고 있는 어린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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