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경옥입니다-촛불

엎친 데 덮친격인가. 유례없는 대폭설로 나라안이 온통 와글거린 것이 며칠 전인데 이번엔 또 대통령 탄핵문제로 전국이 끓는 죽솥처럼 들끓는다.

입 가진 사람이라면 죄다 탄핵 정국에 대해 한마디씩 거들고, 친노(親盧)든 반노(反盧)든 나라의 앞날에 가슴 답답해 하는 한숨소리로 좁은 땅덩이가 들썩거린다.

어느 해 할 것 없이 일년 열두달 내내 '~풍(風)'이니 '~게이트'로 바람 잘 날 없는 이 나라. 왜 이토록 우린 늘상 어수선하고 소란스러울까.

인도의 시성(詩聖) 타고르는 아시아 대륙의 끝에 귀고리처럼 매달린 우리나라를 일컬어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고 했고, 1911년 일제 강점기의 이 땅에서 넉달간 머물렀던 독일인 노베르트 베버(1870~1956) 신부가 당시의 경험과 견문을 쓴 책 제목도 '조용한 아침의 나라에서'였다.

앞서 19세기말에 네 차례나 조선땅을 찾아왔던 영국인 작가이자 지리학자인 이사벨라 버드 비숍(1831~1904)의 책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에 나타난 이미지도 그러했다.

게다가 우리의 관광당국도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는 홍보 문구를 즐겨 사용했다.

때문에 현재의 한국을 잘 모르는 많은 외국인, 특히 서구인들에게 한국이란 나라는 여전히 고즈넉하고 어딘가 정적인 신비를 간직한 이미지로 남아있는 듯하다.

마치 지금 우리가 히말라야의 산악국 부탄이나 무스탕같은 나라들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처럼.

그러기에 동방의 조용한 나라에 대한 호기심으로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이라면 밤낮 시끌벅적한 거리의 소음과 '화통 삶아먹은 것 같은' 거칠고 무례한 언행, 게다가 고성과 욕설, 몸싸움이 그치지 않는 코미디같은 정치판 등을 보며 '이런! 속았군'하며 떨떠름해 할지도 모른다.

하기야 어딜가나 나라 전체가 조용조용한 이웃 일본사람들은 이같은 우리의 소란스러움이 오히려 활기나 생기, 열정으로도 느껴진다고 하니….

요 며칠새 완연한 봄날씨로 양지쪽의 목련나무들은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전국 곳곳을 물들이는 촛불집회 때문일까, 꽃 피운 목련나무마다 상아빛 촛불을 켜든 것 같다.

중국의 첫 우주인 양리웨이(楊利偉)가 우주에서 육안으론 만리장성이 보이지 않더라고 말해 중국 당국이 교과서에서 그 내용을 삭제하기로 한 판에 미국의 우주인 진 키넌은 만리장성이 보이더라고 했다.

이럴 때 솟구치는 말릴 수 없는 호기심. 지금 우주에선 한국의 저 수많은 촛불들이 보일까, 말까.

전경옥 편집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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