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고속도로 군위나들목에 내린 후 군위읍을 거쳐 의성군 금성면 방향으로 5분 정도 가다보면 동북쪽에 해발 400여m 정도의 나지막한 산이 나타난다.
희뿌연 안개가 산중턱까지 드리워지면 그 모습이 바다 위에 떠있는 배모양 같다.
이름도 그래서 선방산(船放山)이다.
전해 내려오는 구담에 의하면 선방산 꼭대기에는 배를 띄울 만한 큰 연못이 하나 있었다.
당나라 장수들이 이곳에서 뱃놀이를 즐긴 후 돌아갈 때 바위를 던져 연못을 메워 버렸다.
이젠 그 자리에 조그마한 옹달샘만 흔적으로 남아있다.
이 옹달샘을 가리켜 사람들은 '장군샘'이라 부른다.
아무리 큰 가뭄에도 지금까지 한차례도 마르지 않았다.
선방산 남쪽자락 중턱으로 일주문도 천왕문도 불이문도 없는 산길을 올라 좁다란 절 앞 계단에 서면 앙상한 가지만 남은 은행나무와 백일홍 나무 사이로 사찰이 모습을 드러낸다.
조계종 제10교구 은해사 말사(末寺)인 지보사(持寶寺)다.
비록 해인사 구광루같이 크지도 않고, 부석사 안양루처럼 화려하지도 않지만 잠시 속세를 떠난 재가수행자가 좌선(坐禪)을 하거나 독서를 하기에는 그만일 듯한 곳이다.
천년고찰인 이 절은 신라 문무왕13년(673)에 의상대사가 창건했으며 '많은 보물을 가지고 있다'고 해 지보사라 이름이 붙여졌다.
단청 물감 재료로 사용하던 오색빛깔의 흙과 장정 10여명이 들어가도 남음직한 큰 가마솥, 아무리 갈아도 물만 부으면 이내 새것으로 변해 영원히 닳지 않는 맷돌 등 수 많은 보물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어느 것도 찾아볼 수 없어 안타깝다.
일부는 임진왜란때 불타고 일제강점기때 일본군에 의해 반출됐을 것이라는 추측만 무성할 뿐이다.
지보사 대웅전 옆 외진 귀퉁이에는 지난 1980년 9월 보물 제682호로 지정된 지보사삼층석탑(持寶寺三層石塔)이 있다.
대다수 사찰의 대웅전 앞뜰에 세원진 탑(塔)과는 다른 풍경이다.
규모도 왜소해 보일 정도로 작지만 빼어난 조각 솜씨와 많은 특색을 지니고 있다.
통일신라시대 때 축조된 이 탑은 높이 4.2m로 이중기단 위에 3층을 올린 형식이다.
상하기단 면석에 팔부신중(八部神衆)과 12지상(十二支像)이 조각되어 있고 상층기단 갑석과 1층 옥신 사이의 별석에는 연화문이 새겨져 있다.
탑신(塔身)에 새겨진 연꽃은 조각이 우수하다.
4면에 새긴 동물의 형상도 높은 예술적인 가치를 평가받고 있다.
하층기단 면석에는 2개의 우주, 1개의 탱주를 새기고 그 사이에 12지상을 양각했다.
하지만 마모가 심한 편이다.
3층 기단 면석에도 팔부신중을 정교하게 양각했다.
이런 특징은 신라 말 내지 고려 초의 장식적인 석탑 기단부와 흡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점은 탑신 부에도 그대로 잘 나타나고 있어 화려하면서도 단정한 고려 초의 석탑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지보사는 200여년 전 대웅전이 화재로 소실된 후 약 4평 규모의 작은 건물을 임시 대웅전으로 사용해왔으나 신도 수가 적어 불사(佛事)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그러다 지난 1994년 행훈(行薰.48.여) 주지 부임 후 대대적인 불사에 나서 강설루복원과 서별당.삼성전.요사채.대웅전을 옛날 크기로 복원해 금단청(金丹靑)을 올리는 등 대소 전각과 경내를 말끔하게 정리했다.
주지 행훈 스님은 "지보사삼층석탑은 본래 산너머 극락사(極樂寺)에 한쌍이 있었으나 빈대가 많아 극락사를 폐사시키면서 군위읍 동부리 절골로 옮긴후 다시 이곳으로 옮겨왔다"며 "극락사 자리에 남아있던 탑 1개는 현재 대구의 한 대학에 있는데 조만간 탑을 찾기 위한 대책을 수립할 계획"이라고 했다.
군위.정창구기자 jungc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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