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경옥입니다-가지치기

가지치기도 거진 마무리돼가는 모양이다.

대구시의 경우 양버즘, 은행, 느티나무 등 15만 여 그루의 가로수 중 3만 여 그루의 가지치기를 최근 마쳤다고 한다.

특히 양버즘나무들은 안쓰러울 정도로 마구 가지들이 잘려나간 모습이다.

나무 중엔 가지치기를 반드시 해야만 하는 나무도 있고, 그렇지 않은 나무들도 있다.

아무래도 양버즘나무는 봄철 꽃가루 알레르기의 주범으로 지목된 탓에 더 가혹한 가지치기를 당하는성싶다.

어느 날 문득 짤막한 가지만 달린채 몸통만 남다시피한 그것들은 한편 우스꽝스러우면서 괴기스럽기까지 하다.

가지치기 모습을 보면 냉정하기 그지없다.

위로 솟은 가지 아래 처져버린 가지, 똑바로 자라지 못하고 옆으로 자라는 가지는 가차없이 잘려나간다.

햇빛을 충분히 받지 못해 잎의 광합성 능력이 줄어 결국 말라죽게 될 가지나 방향이 틀어진 가지 따위는 애시당초 살려둘 필요가 없다는거다.

또한 버스가 지나가는 길에 방해된다고, 빌딩 창문이며 간판 등을 가린다고 싹둑싹둑 잘려나가기도 한다.

구조조정의 서슬퍼런 칼날 앞에 목을 드리운채 가슴조리며 살아가는 샐러리맨들의 모습 같아서 잘려나가는 가지들에 연민의 정을 느끼게도 된다.

가로수들은 늘 매연과 먼지에 시달리는 것도 모자라 긴 겨우내 앙상한 몸으로 삭풍을 견뎌내야하고, 이제 봄이 왔다싶으면 또 가지가 잘려나가는 아픔을 겪는다.

잘린 상처를 후벼파는 꽃샘바람은 또 얼마나 원망스러울까. 짜리몽땅한 몰골로 변한 나무들을 보면 마치 "난 이렇게 산다우"라고 말하는 것 같아 괜히 미안해진다.

미국의 거짓말테스트 전문가인 클리브 백스터 교수의 실험에 따르면 식물도 고통을 느낀다고 했는데….

화초에게 거짓말 테스트 기계의 선을 연결한 백스터가 화초 앞에서 종이에 불을 붙이겠다는 생각으로 성냥에 불을 켜면 거짓말탐지기의 눈금은 평온한 상태를 유지했지만 화초 잎사귀에 불을 붙이겠다는 생각을 하면 눈금이 거칠게 움직이는 현상이 나타났던 것. 이 실험은 이후 다른 학자들에 의해서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

그래, 봄마다 전지칼을 들이대는 사람들을 보며 저 나무들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비명을 질러대겠지. 하지만 바보처럼 착한 그것들은 따스한 봄햇살에 이내 미움도, 원망도 녹아져버리는 모양이다.

4월이 오면 뭉툭한 가지 끝에 새 가지가 돋아나고 연둣빛 새잎들이 매달리는걸 보면. 그래서 지난 여름보다 더 무성한 가지들과 잎들로 더 큰 그늘을 만드는걸 보면.

정치인들로 인해 둘로 갈라진 민심, 그 상처 속에 우리들도 모르게 커져가는 실망감과 원망…. 가지치기 당해 볼품없는 가로수들이 더 절절히 가슴에 와닿는 요즘이다.

전경옥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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