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동물과 인간을 가르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다.
흔히 동물과 인간의 특성을 '본능/지성' 혹은 이로부터 파생되는 '자연/문화' 이분법으로 나누기도 하지만, 이런 구분에서도 언어의 위치는 절대적이다.
우리의 사고도 언어를 떠나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점에서 호모 로퀸스(언어적 인간)는 호모 사피엔스(이성적 인간)를 앞서는 인간의 보다 근본적인 특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인간의 고유성을 규정하는 데 이처럼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언어는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진화 과정에서 인간이 언어를 사용하기 시작한 시점을 실증적으로 검토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까닭에 언어의 역사적 기원을 고찰하는 일은 난감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언어의 기원에 대한 우리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언어가 수행하는 기능에 초점을 맞추어 언어의 논리적 기원을 추론해 보는 것이다.
인간의 삶에서 언어가 하는 역할은 무엇일까? 이 물음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대답은 아마 의사소통의 기능일 것이다.
특유의 의미작용을 통하여 언어가 인간 상호간의 의사를 소통시켜 주는 대표적인 도구라는 점에 대해서는 새삼 부연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이 대답이 인간의 삶에서 언어가 차지하고 있는 좀더 근본적인 지위를 충분히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인간의 삶에서 언어가 없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다음의 경우를 가지고 한 번 생각해보자. 우리는 흔히 붕어의 아이큐가 3이니 4니 하며, 머리가 우둔한 사람을 가리켜 '붕어 대가리'라고 놀린다.
붕어낚시꾼들 사이에서 한 번 놓친 뒤에 이어서 잡히는 고기는 바로 조금 전에 놓친 그 붕어라는 농담반 진담반의 이야기도 있고 보면 붕어의 지능지수가 낮기는 낮은 모양이다.
그런데 만약 붕어에게 개별적 사건들을 개념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 가령 넓은 물 속을 헤엄쳐 다니다가 이따금 눈앞에 나타나는 구부러진 철사들에 매달려 있는 먹이에 유혹되어 아가미가 찢겨진 경험을 그 순간만 지나면 이내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먹이를 매단 채 자신을 현혹하는 그 모든 구부러진 철사들의 공통점을 추출해내어, 이를 '낚시바늘'라는 기표로 묶어서 개념화할 수 있는 능력이 붕어에게도 있다면 어떻게 될까? 낚시바늘을 만날 때마다 매 번 목숨을 저당잡히는 일 없이, 아마 자기가 알고 있는 '낚시바늘'이라는 개념을 통해 현실의 '낚시바늘들'을 인식해냄으로써 시행착오를 최소화하며 유사한 경험에 성공적으로 대처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삶에서 언어가 수행하는 가장 본질적인 기능이 바로 이것이다.
인간은 언어를 통하여 세계를 자신의 머리 속에 시뮬레이션시킨다.
동물들처럼 자동적인 적응시스템인 본능에 전폭적으로 의지하지 않고도 인간이 다른 동물에 비해 월등하게 환경에 적응해나갈 수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우리는 세계를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경험하지 않고도, 마치 실내 운전연습장의 경우처럼 언어라는 가상의 연습장을 머리 속에 하나씩 차려놓고 세계를 그 안에 시뮬레이션시켜 놓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언어는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간이 고안해 낸 필수적인 생존도구이다.
이것은 '다나카'라는 일본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이미 머리 속에 개념화되어 있는 '일본사람' 일반에 대한 생각이 자연스럽게 작동하면서 그에 대한 나의 대체적인 대응태도가 먼저 결정되는 이치와 같다.
이것이 개념적 상징체계로서 언어가 가지는 강점이다.
그것은 '일본사람'이라는 하나의 개념적 기호를 통하여 구체적인 수많은 '일본사람들'을 대응해나갈 수 있는, 지극히 효율적인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 이치가 그렇듯이, 개념적 상징체계로서 언어가 지니고 있는 이런 강점은 그대로 결점이 되기도 한다.
작금의 우리 정치인들의 경우에서 보듯이, 그것은 개개의 구체적인 사태들을 해당 개념의 의미 밑으로 강제로 편입시킴으로써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가로막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국민의 뜻'이란 유령이 우리 주위를 배회하는 계절이다.
특히 탄핵정국과 맞물려 모든 정치적 담론은 생산되는 즉시 '국민의 뜻'으로 포장된다.
이런 개념적 사고의 횡포로부터 벗어나자면 모두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도매금으로 넘어가지 말 일이다.
그리하여 '현명한 국민'으로도 '어리석은 백성'으로도 포장되지 말고, 오직 주체적 관점에서 냉정하게 이 시국을 심판할 일이다.
그것이 자신의 특정한 경험을 '국민의 뜻'으로 일반화시켜 강요하는 우리시대의 정치적 독선들을 퇴장시키는 길이다.
박원재(한국국학진흥원 수석연구원)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세 번째 대권 도전마저…홍준표 정계 은퇴 선언, 향후 행보는?
野, '피고인 대통령 당선 시 재판 중지' 법 개정 추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