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한자=廢: 폐할 폐. 梨: 배나무 리. 逃: 달아날 도. 雹: 우박 박. 散: 흩을 산. 模: 법 모. 寫: 베낄 사.
학년 초가 되면 교사나 학생들은 유난히 바쁘다.
교사는 올 한 해, 혹은 한 학기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학생들은 교사의 교수법을 익히고 효율적인 학습법을 찾으려고 애쓰는 가운데 바쁜 일상을 보내게 되는 것이다.
특히 학생들을 바쁘게 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숙제이다.
얼마 전 학생의 숙제공책을 검사하다가 공책 표지에 인쇄된 '漢文廢人(한문폐인)'이라는 語句(어구)를 보게 되었는데, 순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廢人(폐인)'이라는 말을 있는 그대로 풀이하면 '한문으로 몸을 망친사람'이란 뜻이 되는데, '아! 한문을 얼마나 열심히 했길래 몸까지 망치는가?'라고 생각해서 '한문을 열심히 한 사람'이라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廢人(폐인)이라는 말은 '병 따위로 몸을 망친 사람' 또는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좋지 않을 경우에만 쓰인다.
즉, '한문을 하게 되면 몸을 망치게 된다'라는 뜻으로 전락한다.
한문공책을 파는 사업자가 과연 '漢文廢人'이라는 말을 한문공책에 써야하는지 의문이다.
비단, 이와 같은 경우뿐만이 아니라 우리들 주위에서는 한자어를 잘못 알고 쓰는 경우를 빈번히 찾아볼 수 있다.
지금은 하루를 24등분해서 時(시)로 표현하지만 조선시대는 12등분한 辰(진)을 시간의 단위로 삼았다.
"오늘 하루 운이 없어"라는 말을 "日辰(일진)이 좋지 않아"라고 표현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와는 다르게 밤 시간을 따로 5등분하여 '更(경)'이라는 단위를 사용하였는데, 대략 해가 질 때부터 해가 뜰 때까지를 일컫는다.
보통 오후 7~9시까지를 初更(초경), 9~11시까지를 二更(이경), 11~01시까지를 三更(삼경), 01~03시까지를 四更(사경), 03~05시까지를 五更(오경)으로 본다.
많은 사람들이 '한밤중에 몰래 달아나다'라는 뜻으로 '야밤도주'라고 하는데, 이는 '夜半逃走(야반도주)'가 옳은 표현이다.
즉 밤의 반 쯤 되는 시각이니[三更 즈음] 가장 어두울 때가 아니겠는가. 적어도 몰래 달아날 일이 있으면 가장 어두운 틈을 타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외에도 혼동하기 쉬운 한자어에 절대절명, 풍지박산, 성대묘사 등이 있는데 이는 絶體絶命(절체절명: 궁지에 몰려 살아날 길이 없게 된 막다른 처지), 風飛雹散(풍비박산: 사방으로 날아 흩어짐), 聲帶模寫(성대모사: 남의 목소리나 동물의 소리를 흉내냄)로 고쳐서 사용해야 한다.
자신이 쓰고 있는 한자어가 어떠한 한자로 이루어져 있는지, 혹은 정확한 의미는 어떠한 것인지 되짚어 보고, 이제껏 잘못 사용하였거나 잘못 만들어져 사용하고 있는 것을 고쳐서 사용하는 것도 한자, 한문 공부에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김상규(대구 능인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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