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사태는 더욱 오리무중이고 우리의 우려 또한 커져 간다.
이라크 사태가 더 어려워진다면 파병과 관련하여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옳을 것인가? 먼저 사태를 보면서 앞으로 여러 가지 가능성을 예측해보자.
첫째는, 이라크 사태가 미국 입장에서 최악의 시나리오로 가는 것이다.
미국은 이라크 내 시아파 세력을 믿어 왔다.
후세인이 수니파이고 시아파가 인구의 60%를 차지하기 때문에 후세인을 제거하면 시아파는 이를 환영하고 미국에 협조할 것이라고 믿어 왔다.
그런데, 지금의 사태는 시아파도 일부는 미국에 등을 돌리고, 오히려 수니파와 협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만약 시아파 대부분이 미국에 등을 돌린다면 미국은 이라크에서 더 이상 해볼 전망이 서지 않을 것이다.
둘째는, 시아파 중에 강.온세 및 수니파, 쿠르드족간의 충돌로 내전이 일어나는 경우다.
이라크는 인종별로는 아랍, 쿠르드, 앗시리안, 투르멘족 등이 뒤섞여 있고, 무슬림도 시아, 수니로 나뉘어져 있기 때문에 사담 후세인 시절에도 정정 불안 요인은 항상 있어왔다.
내전의 경우 미국은 대단히 어려운 상황에 부닥칠 것이다.
세 번째 시나리오는 미국이 UN이나 NATO 회원국으로부터 협조를 받으면서 시아파 온건세력의 도움을 얻어 급진세력을 제압하고 가급적 조기에 정권을 이양하고 퇴진하는 모습을 갖추는 것이다.
한국으로는 세 번째의 상황에서 자기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면서 미국과 함께 퇴진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그러나 국제정세는 힘 있는 나라의 뜻대로도 움직이지 않는 것이 상례이고, 이라크 사태는 폭발성이 항상 있다.
아울러 파병은 남의 나라에 군대를 보내는 것이기 때문에 파병에 따른 군사적 위험성은 정책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는 동시에 한국 내 여론의 향배도 중요한 요인이 된다.
만약 이라크 사태가 위에 말한 첫 번째나 두 번째처럼 최악의 경우로 치달을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가 우리의 과제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는 파병을 재고할 행동의 폭이 극히 제한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파병은 한반도의 안보상황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미국의 부탁과 대미관계 때문에 우리 군인들의 심각한 안전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파병을 결정한 것이다.
대미관계만 본다면 이라크 상황이 나쁘면 나쁠수록 그 만큼 한국에 대한 미국의 고마움은 증가할 것이며 그것은 한반도 위기시 미국에 대한 채권처럼 작용할 것이다.
이라크의 상황이 악화되기 때문에 한국이 파병결정을 재고한다면 미국도 한반도 비상사태에 주한미군을 빼는 것을 우리는 반대할 수 없을 것이다.
냉전이 끝난 이후부터 주한미군은 선택적으로 존재해왔고 주한미군의 유지에서 오는 미국의 안보상의 이득은 상대적이기 때문에 우리는 미국이 중요한 계기가 있으면 주한미군을 철수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봐야 한다.
다른 측면으로 볼 때 우리는 파병에서 오는 군사적 경험의 축적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라이다.
따라서 사태가 어려우면 그만큼 실전 경험의 가치가 높아진다고 보아야 한다.
이라크 사태는 어떤 면에서 70년대 베트남의 상황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월남전은 미국 내에서나 세계적으로 인기 없는 전쟁이었기 때문에 한국의 월남파병에 따른 부담은 적지 않았다.
그리고 월남전은 대규모 전쟁이었기 때문에 인명살상의 위험성이 더 컸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우리는 미국이 일대 패전을 경험한 전쟁에서 경제적으로 실익을 얻고 미국에 대하여 동맹국으로서 우호관계도 쌓으면서 한반도 밖에서 실전경험을 얻는 긍정적 효과를 올렸던 것이다.
또한 베트남인들이 한국에 대하여 갖는 이미지도 크게 나쁘지 않았으며, 우리가 공산 베트남과 수교를 하는데 월남전 참전이 큰 부담으로 작용하지 않았다.
물론 이라크는 월남전과 같은 상황은 아니며 우리의 이라크 파병 목적이 이라크의 재건과 인도적 지원이기 때문에 월남전에서 보다는 대의명분이 있다고 본다.
앞으로 상당기간 미국은 이 지구상에서 초강대국으로 유지되고, 한반도에 있어서 미군은 우리의 통일시까지 긴요한 역할을 할 것이며, 또한 한국의 이미지 구축은 미국과 별도로 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우리는 이라크에서 비록 유리하지 않는 안보상황이 전개된다고 하더라도 파병을 재고하는 등의 발상은 지극히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본다.
유종하(서강대 교수.전 외무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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