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성과급 도입...임금地圖 달라진다

대다수 기업인들은 성과주의 임금을 통해 근로자들에게 목표의식을 심어줘야만 생산성이 향상될 수 있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오직 '경쟁'만이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근원이란 것이다.

더욱이 일부에서는 우리나라의 노동생산성이 선진국에 비해 떨어진다는 것을 내세우며 성과주의 임금제만이 생산성을 높이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성과주의 임금제도는 근로자간 불신으로 이어져 기업내 '협업기능'이 깨진다는 얘기. 미국식 제도를 무조건 따라가는 것보다 한국적 기업환경에 맞는 임금제도 정립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성과주의 임금제 실태

이른바 빅3 계열사 구미사업장에 근무하는 김동규(39.가명)과장. 입사한 지 12년째인 그는 올 초 설 연휴를 앞두고 자신의 연봉(4천여만원) 절반에 해당하는 2천만원을 한꺼번에 초과이익분배금(PS)으로 받았다.

김 과장은 이에 앞서 작년말엔 특별상여금으로 기본급의 500%를 받았고 1월초엔 생산장려금(PI)도 150%를 챙겼다.

최근 몇 달새 '덤으로' 받은 성과급만 3천만원에 이르러 임금총액이 연간 7천만원으로 껑충 뛰었다.

이런 반면 다른 부서에 근무하던 김과장의 입사 동기는 성과급을 받지 못했다.

초과이익을 올리지 못했다는 이유다.

입사동기지만 두 사람의 임금차이는 3천만원까지 벌어졌다.

성과주의 임금제를 시행하는 대기업은 입사동기라 하더라도 개인별 임금격차가 수천만원에 이르는 것이다.

포스코 계열사에 근무하는 김 과장과 이 과장도 마찬가지. 두사람 역시 입사동기지만 지난해 연봉의 경우, 김 과장이 350만원쯤 더 많았다.

생산성을 적용한 인사고과에서 김 과장은 최고등급인 5등급, 이 과장은 꼴찌인 1등급을 받았기 때문이다.

포스코는 지난해 1천150%에 이르는 성과급.상여금 등을 지급했으며 근로자 개인별로 평균 200%가량 연봉 차이가 발생했다.

성과주의 임금제도를 도입하는 기업들은 사업부서나 팀별은 물론, 개인별로도 '점수'를 매기면서 각자가 치열한 경쟁을 벌이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회사 성과가 올라간다는 것.

삼성전자 한 관계자는 "예전엔 회사가 아무리 잘 나가더라도 근로자 자신에게 직접적인 영향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회사가 잘 달리면 직원들의 주머니가 곧바로 두둑해진다는 의식이 확산되고 있다"며 "성과주의 임금제도의 위력"이라고 말했다.

이 회사는 지난해 실적을 바탕으로 올 초 기본급의 600∼650%에 이르는 특별성과급을 지급했고 사업부별로 연봉의 5∼50%에 해당하는 초과이익분배금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성과주의 임금제도는 인사고과의 정확성을 둘러싸고 직원들간에 마찰이 일어날 소지가 많지만 기업들은 근로자 개인이 각자가 받은 연봉을 완전 비밀에 부치게 함으로써 부작용을 완화하고 있다.

연봉계약시 임금 일체에 관한 사항을 누설하지 않겠다는 각서까지 쓰고 있는 것.

포항공단 한 업체의 3년차 과장 이모(39)씨. 그는 동기는 물론 팀장, 팀원, 동료들의 급여 액수를 모른다.

4급 이상 사원부터 임원까지 인사고과에 따라 업적연봉을 주고 있지만 회사가 이를 기밀로 해 누가 얼마나 받는지를 알지 못한다.

▨성과주의 임금 확산속도

대기업들은 현재 시행 중인 성과주의 임금제가 여전히 미진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강도를 더욱 높여야한다는 것.

포스코는 올해 성과주의 임금체계를 또다시 손질한다.

인사고과 최저등급자의 임금을 동결하는 대신 최고등급자에게는 공식인상률의 1.6배를 적용한다.

당해연도에만 연봉 차이가 나는 것뿐만 아니라 인상률을 계속 조정, 격차를 갈수록 벌어지게 만든다는 뜻.

입사시기와 직급 등 조건이 같은 두 사람이 3년 연속 최고 등급과 최저등급을 받을 경우, 과장직급에서만 1천500만원 가량의 연봉차가 예상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성과주의 임금제도는 대기업을 넘어 중소기업으로까지 밀려 들어오고 있다.

실제 중소기업 비중이 큰 대구지역에서도 상당수 중견기업들이 성과주의 임금제 대열에 속속 합류하고 있다.

대구지역 한 중견건설업체는 올 초 전 직원과 1년간의 연봉계약을 했다.

해가 바뀌면 월급이 뛰는 호봉제를 탈피, 성과주의에 기초한 임금을 주겠다는 것이다.

이 회사의 차장급 사원(40)은 "지난해 연봉이 약 2천900만원이었는데 올해 3천만원에 연봉 계약을 맺었다"며 "프로야구선수처럼 매년 계약을 한다는 것이 찜찜하지만 올해 실적을 많이 올리면 연봉총액의 30%에 이르는 두둑한 인센티브도 보장된다"고 했다.

대구은행은 올해 성과관리 컨설팅을 통해 개인업적 평가시스템을 도입, 내년부터 성과형 임금제도를 확산시킬 방침이다.

현재는 극소수 간부사원에 대해서만 연봉제를 실시하지만 직무분석 시스템이 갖춰지면 성과주의 임금 적용 대상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

대구백화점은 사실상의 '무늬만 연봉제'를 탈피, 올해부터 직원들에 대해 5등급 인사고과제도를 본격화한다.

ABCDE 5등급으로 개인별 고과를 매겨 A, B는 더 얹어주고, C는 그대로, D, E는 연봉을 깎겠다는 의미.

지난 1998년 전직원 연봉제를 도입했던 평화산업 김귀식 부사장은 "결국 노동생산성의 향상은 기업의 생산성 향상으로 직결되고 있다"며 "임금 메리트에 자극을 느낀 직원들이 스스로 생산성 향상을 불러온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성과주의 임금 무용론

자동차 부품업체인 평화정공. 이 회사는 매년 두자릿수의 성장세를 이어오고 있지만 호봉제를 유지하고 있다.

게다가 이 회사는 일부 기업들로부터 '전근대적' 제도로 손가락질까지 받고 있는 호봉제를 바꿀 의향이 지금으로선 없다고 했다.

호봉제를 채택하고 있지만 이 회사는 지난해 매출 1천200억원에 이어 올해 매출도 1천500억원이 무난할 것으로 보이고 내년엔 2천억원까지 매출을 늘려잡고 있다고 전했다.

임금체계 때문에 생산성이 왔다갔다하며 떨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 회사 장원근 재무팀장은 "성과형 임금제도는 우리 근로자들의 정서에 맞지 않는다"며 "제대로 된 고과평가가 이뤄지기 힘들기 때문에 결국 근로자들의 불만이 속출하게 되고 오히려 생산성이 나빠지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소문난 알짜 회사 대구도시가스. 이 회사 역시 호봉제를 고수하고 있다.

제대로 된 직무분석, 직원들이 수긍하는 직무분석이 보장되지 않는 한 임금제도를 성과주의로 바꿀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 회사 박종률 기획홍보과장은 "관리직은 업무성과 측정이 쉽지 않은데 무리하게 성과주의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크다"고 했다.

매일신문이 전국 1천대 기업 가운데 대구지역에 본사를 둔 업체 19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아직은' 호봉제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규성 민주노총 구미지부장은 "노동자들이 인정하고 신뢰할 수 있는 노동생산성의 측정방법 및 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고 노동자의 경영참여도 보장안돼 기업이 일방적으로 정한 생산성 잣대 임금은 기업입장만을 고려한 것"이라고 했다.

이철수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 정책기획국장도 "근로자간 경쟁의 심화로 기업 내 협업기능이 깨지면서 생산성이 오히려 나빠질 것"이라며 "근로자간 갈등관계를 낳고 결국엔 노사갈등만 심화시킬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노사가 임금체계에 대한 합리적 합의를 거쳐 변형을 가져와야 하며 노사간 쌍방향 커뮤니케이션 활성화부터 시도해야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김성우기자 swkim@imaeil.com

박정출기자 jcpark@imaeil.com

최경철기자 koala@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