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열린 17대 총선 한나라당 당선자대회에서 박근혜(朴槿惠) 대표는 "우리는 이제 진짜 야당이 됐다. 우리가 서있는 천막당사가 한나라당이 서 있는 현 위치"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말로 많은 사람에게 처연한 감정을 자아내게 했다.
그러나 천막당사로 옮긴지 한달을 넘긴 지금 박 대표의 이말의 진실성은 의심받기 시작하고 있다. '차떼기 정당'이란 오명을 씻고 새출발하겠다는 뜻의 천막당사 이전이 결국은 총선에서 한나라당의 몰락을 막기 위한 고도의 정치적 술수가 아니었냐는 것이다. 심지어는 불법자금이 창당자금으로 흘러들어간 사실이 드러나자 농협공판장으로 옮긴 열린우리당을 표절한 저급의 이미지 조작이라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천막당사에 이러한 의심이 쏟아지고 있는 이유는 당의 주인인 의원들은 아예 보이지 않고 오직 하위 당직자와 기자들만 당사를 지키고 있는 '이상한' 풍경 때문이다. 박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는 오전 회의때 잠깐 들렀다 회의가 끝난 즉시 사라진다. 모두들 개인 일정이 있어서 그렇다고 하는데 어쨋든 지도부 회의가 끝나면 당사는 을씨년스러울 정도로 적막감이 돈다.
지도부에 들지 않는 평의원들은 그나마 보기가 더 어렵다. 그래서 어쩌다 천막당사에 들러본 의원들은 천막당사의 주변환경에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한다. 신문이나 풍문을 통해 알고 있지만 이렇게 나쁜줄은 몰랐다는 표정이다.
28일 오전 기자들이 석유난로(극심한 일교차 때문에 천막기자실에는 오전내내 난로를 켜놓는다)가 뿜어내는 석유냄새와 황사가 뒤섞인 기자실의 매캐한 공기 속에서 노트북에 내려앉는 황사먼지를 닦아가며 기사작성을 하고있을 때 인천의 모 의원이 기자실에 들렀다. 그는 기자실의 혼탁한 공기와 전화선과 인터넷 LAN선이 뒤얽혀 어지러운 간이탁자에서 일하고 있는 기자들을 보고서는 "아 정말 이렇게 열악한 줄 몰랐습니다"며 연신 감탄사(?)을 연발하며 농담조로 "기자실을 조속히 옮기도록 당헌당규를 개정하겠습니다"고 한뒤 그대로 사라졌다.
하위 당직자들도 내색은 않지만 의원들의 이러한 행태에 큰 불만을 갖고 있다. 사정이 이렇게 돌아가자 천막당사의 약발은 다되었으니 이쯤서 접자는 얘기도 자주 나온다. 의원들이 없는 천막당사는 결국 국민들을 기만하는 것 밖에 안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천막당사 부지계약을 한달더 연장했다. 따라서 기자들과 말단 당직자들은 적어도 앞으로 한달더 천막생활을 해야 한다. 한나라당은 그 이유로 팔려고 내놓은 구당사에 대한 원매자의 실사작업이 5월말에 끝나 매각협상도 6월초가 되어야 마무리될 것이라는 점을 든다.
그러나 다른 이유도 있는 것 같다. 하루아침에 번듯한 건물로 옮길 경우 결국 천막당사는 쇼였다는 비판을 받을 것이 뻔한 만큼 열린우리당사 수준에 맞춰야 하는데 마땅한 건물이 없다는 것이 한나라당 지도부의 고민이라는 전언이다. 총선이 끝나도 우리정치는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이미지 정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정경훈기자 jgh0316@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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