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레면 신록의 계절 5월이다.
그래서인지 벌써 햇볕이 예사롭지 않다.
내리쬐는 기운이 꼭 한여름 폭염을 닮았다.
화창하던 봄이 일찍 물러선 것일까.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는 글귀가 절로 입밖으로 나온다.
심심찮게 황사가 땅을 덮는 요즘 물이 그리운 것은 인지상정. 아무래도 얼굴을 세차게 할퀴며 지나가는 바닷바람이 어울릴 것 같다.
대구에서 고작 1시간30분, 이번 주말 포항으로 행선지를 잡는다면 여러모로 좋을 듯싶다.
포항 시내를 조금만 벗어나면 의외로 볼거리가 많고, 5월2일에는 호미곶 광장에서 등대축제도 첫선을 보이기 때문이다.
◆천년도량 오어사(吾魚寺)
앞쪽으로 오어호(吾魚湖), 뒤쪽으로는 운제산(雲悌山)이 덮고 있는 오어사는 신라 26대 진평왕 때 지어진 천년 고찰. 원효대사와 혜공선사가 이곳에서 수도할 때 법력으로 개천의 고기를 생환토록 시합을 했는데 그 중 한마리가 살아서 힘차게 헤엄치자 그 고기를 서로 자신(吾)이 살린 고기(魚)라 했다고 해 오어사라 불리게 되었다는 재미나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유래에서 보듯 이곳은 원효(元曉).혜공(惠空).의상(義湘).자장(慈藏) 등 당대 내로라하는 고승들이 머문 명사찰. 그만큼 주위 비경이 일품이다.
큼지막한 저수지 주위로 빽빽이 들어선 수목들이 연초록빛 싱그러움을 토해낸다.
그늘 밑에서 양동이에 밥을 비벼 먹는 여행객들의 모습을 보자 어느새 입안에 군침이 가득해진다.
'끼욱끼욱' 새소리가 귓가를 맴돌고 호수 물살이 바람에 하얗게 퍼져나가 나그네의 마음도 출렁인다.
사찰 뒤편 원효암으로 가는 다리 밑에 서면 수많은 물고기들이 평화롭게 헤엄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
어디선가 나비 하나가 꽃나무에 살짝 내려앉는다.
장자(莊子)의 호접몽(胡蝶夢)처럼 내마음도 나비가 되어 절 주위를 배회한다.
◆청보리밭이 유명한 925번 해안도로
포항제철~동해~대보~호미곶으로 이어진 해안도로는 포항 나들이에서 빼놓을 수 없는 드라이브 코스. 도로를 따라 달리다보면 제각각 멋을 낸 모텔들과 레스토랑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여느 해안도로와는 사뭇 다른 모습. 아무래도 우리나라에서 해가 가장 먼저 뜬다는 호미곶의 유명세 덕택일 터. 자그마한 갯마을마다 좋은 목을 잡아 낚시를 하려는 강태공들이 눈에 들어온다.
드라이브하다 한적한 갯마을을 골라 잠깐 휴식을 취하는 것도 괜찮다.
한가롭게 날아다니는 갈매기들과 바쁘게 손을 움직이는 어부, 발밑을 간지르는 파도…. 그저 머리 식히기에는 그만인 풍경들이다.
호미곶에 이르기 직전, 대보면 구만2리에 다다르면 뜻밖의 풍경과 만나게 된다.
바로 끝없이 펼쳐진 20여만평의 보리밭이 그것. 파릇파릇 올라온 보리들이 해풍에 살랑이면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되뇌이게 된다.
기가 막힌 풍경이 알음알음 알려지면서 평일에도 전국에서 사진작가나 길손들이 종종 찾아온다고 한다.
◆"등대 아님 용광로 봐봤어"-이색 박물관
'상생의 손'으로 유명한 호미곶은 말할 필요가 없을 만큼 유명한 관광지. 하지만 보통 이곳에 위치한 등대박물관은 그냥 지나쳐 버리기가 쉽다.
등대박물관은 국내 유일이라는 희소성도 있지만 보통 때 보기 힘든 다양한 해양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어 꼭 한번 관람할 만한 곳이다.
등대관.유물전시관 등 3개의 전시관과 야외전시장으로 이루어진 등대박물관은 등대 축소모형을 비롯, 다양한 항로표지.등대 관련 유물 등 모두 3천여점의 자료를 갖고 있다.
특히 과거에 사용된 등대 유물들과 시뮬레이터에서 직접 배를 운항해볼 수 있는 운항체험실이 관람객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등대박물관 옆 해양 수산관에 전시된 각종 선박 모형도 볼거리. 054)284-4857.
포항제철 본사 옆에 지어진 포스코역사관도 가는 길에 한번 들러보자. 지난해 7월 개관한 포스코역사관은 지상 3층, 전시면적 600평으로 1천300톤의 철을 활용한 건물 외관부터 역동적인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역사관에 들어서면 박정희 전 대통령의 포철 창립에서부터 세계 속의 포철이 되기까지의 걸어온 과정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대형 용광로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푸른 잔디가 깔린 야외전시장에는 수십미터의 삼화제철소 고로가 웅장한 모습을 뽐내고 있다.
어린이들의 교육장으로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
보안상의 문제로 예약이 필요하다.
054)220-7720.
전창훈기자 apolonj@imaeil.com
◇가는길
경주IC→포항→포항제철(포스코 역사관)→구룡포 방향 31번 국도→925번 지방도→호미곶
↘청림삼거리→929번 지방도→오천읍→오어사
◇맛집
925번 지방도를 따라 가장 먼저 만나는 동해면에는 임곡횟집(054-292-2100)이라는 맛집이 있다.
이곳에서 물회를 한번 맛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호박전과 호박죽으로 입맛을 돋운 뒤 싱싱한 회에 이 집만의 독특한 고추장을 버무리면 한그릇은 뚝딱이다.
뒤에 나오는 매운탕에는 수제비가 들어있어 비릿한 맛이 적다.
물회 1인분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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