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무현이즘

1970년대 후반 영국은 과도한 사회복지와 노조의 강성화로 영국병을 앓고 있었다.

경제가 극도로 침체돼 IMF의 구제금융을 받는 상황에까지 몰렸다.

이때 등장한 것이 '철의 여인' 대처다.

1979년부터 90년까지의 집권기간 동안 대처는 시장경제 원리에 입각한 개혁을 일관되게 추진했다.

세계수준의 경쟁력=영국화라는 개념이 정부.경제.교육.자치 등 사회 각 부문에 무차별적으로 적용됐다.

1980년 75만 명이던 공무원 수는 87년 64만 명으로 줄어들었다.

고비용 저효율의 정부업무는 반관반민의 각종 대행기구로 넘겨졌다.

행정서비스에 민과 관의 경쟁을 유도해 재정지출을 크게 줄인 것이다.

또 노조와 사활을 건 싸움을 벌이며 '노동시장 유연화'를 추구했다.

노조의 법적 지위를 떨어뜨리는 한편 탈정치화를 노조개혁의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노조가 정치에 개입하면 경제정책이 노조의 정치논리로 왜곡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영국경제가 안정기조를 걷고 있는 것은 80년대 대처리즘의 밑바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잃어버린 1년' 이후 외부경제환경이 급속히 나빠지면서 나라 곳곳에서 비명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고유가, 중국쇼크, 미국 금리 인상, 주가 폭락 등의 악재들이 얼키설키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시장은 쥐 죽은 듯 조용하고, 업소에는 한숨만 넘쳐난다.

고등학생의 80%가 실업걱정을 할 정도로 경제위기의 파장은 커지고 있다.

9급 공무원 공채에 10만 명이 몰리는 비정상적 상황이 보도되고 있다.

경제 살리기가 아니라 국가 경제체질을 바꿔주지 않으면 안될 형편이다.

집권 2기를 맞는 노무현 정부가 경제 살리기를 주요 국정과제로 들고 나왔다.

그러나 정부와 여당은 심각하게 경제 걱정을 하는 모습이 아니다.

얼마 전까지도 숫자 몇 개를 들이대며 상황이 나쁘지 않다 강변했었다.

새로 출범한 여당은 급하지도 않은 개혁에 정치력을 소진하며 딴전을 부리고 있다.

경제상황에 대한 기본인식에서 정부와 국민간에 큰 괴리가 있는 것이다.

국민들이 막연하게 느끼는 위기감의 실체는 딴 데 있는 지도 모른다.

80년대 대처리즘을 이 시대 우리나라에 대입해보면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공공부문부터 살펴보자. 93년 김영삼 정부 때 공무원 수는 56만8천 명(군인 제외)이었다.

98년 김대중 정부 시절에는 이 숫자가 55만6천명으로 감소했다.

그러나 2004년 6월 노무현 정부는 다시 58만 8천명으로 늘려놓았다.

올 들어 1만, 현 정부 들어 3만 이상이 늘어났다.

공기업 등 127개 공공기관에 대해서는 매년 정원의 3% 이상씩 청년 미취업자를 채용토록 권고하는 청년실업해소특별법도 추진 중이다.

집배원, 환경미화원 등 3만 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조치도 곧 취해진다.

민간부문에 대해서는 근로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늘린다는 구상을 발표했었다.

노조는 어떤가. 정치색 강한 강성 아니면 초강성이다.

노조의 존립목적인 임금과 복지의 확대보다 정치적 활동에 더 열심인 것으로 비쳐진다.

지난 17대 총선에서는 노조 세력이 원내정당으로 발전했다.

경제문제가 정치논리로 얼룩질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진 것이다.

우리가 영국병을 닮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꺼림칙하기만 하다.

최근 정부의 경제.실업 대책들을 보면 스스로가 경제난 극복의 원칙을 허물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솔선수범과 자기희생 없는 경제 살리기는 실패의 밑바탕을 깐 것이나 마찬가지다.

진부한 이야기지만 경제 살리기 해법은 사회 각 부문의 경쟁력 확보와 정치논리의 배제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 조건과 기반을 만들어주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일자리 늘리기가 다급하다고 공무원 수를 늘리고 공기업을 취업알선창구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공기업 부실화의 책임은 언젠가 국민 몫으로 되돌아오게 마련이다.

경쟁력 강화가 전제되지 않은 실업대책은 나라를 비만체질로 만들게 된다.

비정규직의 차별해소도 정규직의 양보 위에서 점진적으로 이뤄지는 게 바람직하다.

정치화된 강성노조를 유연화시키는 일도 경제 살리기에서 빠트릴 수 없는 부분이다.

노조운동이 지나치게 활성화되면 결국 노동자들을 자승자박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지금의 일자리 부족이 강성노조와 무관하다고 단언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기업은 무한정의 돈을 가진 봉이 아니다.

기업을 살찌우지 않고서는 분배정책이 불가능하다.

실패한 사회주의 국가들이 그 전철을 보여주고 있다.

70년대 초 '중남미의 기적' 멕시코는 82년 대외채무 지불유예, 94년 구제금융사태를 겪었다.

98년 대외채무 지불유예를 선언했던 러시아는 2003년 현재 650억 달러의 외환보유고를 기록하며 탄탄한 경제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사례들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국가 경제 변화의 급격성이다.

기적이 파탄으로 바뀌고, 파탄이 기적으로 바뀌는데 걸린 시간이 10년 미만이다.

신자유주의는 우리에게 한 치의 숨쉴 틈도 주지 않는다.

대처와 노무현 시대의 차이점이 그것이다.

무현이즘에게는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

경제정책의 성공과 실패는 임기 중에 국가경제의 도약과 파탄으로 결론 날 수 있다.

정부의 경제 살리기가 꼭 성공하기를 빈다.

박진용(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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