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경자유전 원칙 회복을 위한 농지 전수조사가 본격화하면서 농촌 현장이 술렁이고 있다. 투기 목적의 농지 보유와 불법 임대차를 바로잡겠다는 정책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현실적으로 유지돼 온 도지 관행까지 위축될 수 있어서다.
◆ "농사지을 사람 없어 도지 준다"
#1. 경북 예천군에서 40년 가까이 농사를 지어온 70대 김씨는 최근 정부의 농지 전수조사 소식을 접한 뒤 마음이 편치 않다. 몸이 불편해 도지를 준 전답이 경자유전을 원칙으로 하는 이번 조사에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그는 몇 해 전 다리를 크게 다친 데다 고령에, 일손 부족으로 농사를 포기했다. 논을 팔려고 해도 원하는 값을 쳐주는 사람이 없고, 자녀들도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어 결국 바로 옆 논에서 농사를 짓는 이웃에게 경작을 맡겼다. 계약서 없이 구두로 해마다 쌀 한 가마니를 받기로 한 것이 전부다.
김 씨는 "농촌에서는 각자 사정에 따라 서로 도우며 농사짓는 경우가 흔한 데 혹시 조사에서 문제가 되지 않을지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2. 2년 전 부친으로부터 농지를 상속받은 박지훈(44) 씨도 도지를 주고 있다. 당시 부친의 장례식장에 조문을 온 이웃이 부친이 상속한 땅에서 예전부터 도지를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그대로 농사를 맡기기로 한 것이다. 구두로 확인만 했고 별도의 계약서는 작성하지 않았다. 대신 부친이 생전 보내주던 것처럼 수확기마다 쌀과 농산물 일부를 받기로 했다.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그는 여전히 직접 농사를 지을 생각은 없다.
박 씨는 "당시 고향 친구들도 도지를 준다는 얘기를 듣고 원래 도지를 하던 이웃에게 맡기기로 결정했다. 부친의 논도 관리되고, 쌀과 직불금까지 들어온다고 하니 불법 여부까지 생각 못하고 '오히려 다행'이라며 준 것"이라고 말했다.
◆도지 제도 전수조사의 주요 타깃 될까… 불안한 지주
정부의 이번 농지 전수조사는 투기 목적의 농지 보유와 불법 임대차, 불법 전용, 무단 휴경 등을 가려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농촌 지역에서는 도지 형태의 불법 임대차가 주된 조사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개발 수요가 적은 지방 농촌에서는 투기성 농지나 상업·주거용 불법 전용이 사례가 드물어서다.
앞서 정부의 기본 조사 결과도 도지 등 불법 임대차 의심 비율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진행한 기본조사를 보면 1996년 이후 취득한 농지 136만㏊의 97%를 조사한 결과 불법 임대차와 무단 휴경, 불법 전용, 소유 제한 위반 의심 등이 전체의 27%(중복포함)를 차지했다. 유형별로는 불법 임대차 의심이 21.1%로 가장 많았고, 무단 휴경(11.6%), 불법 전용(9.0%), 소유 제한 위반(1.4%) 순으로 나타났다.
8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심층조사도 불법 임대차 여부와 휴경 사유 확인에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고령의 지주가 직접 경작을 못 해 이웃 농민에게 농지를 맡기거나 휴경하는 사례가 농촌에서는 가장 흔하기 때문이다. 불법 전용 사례도 대부분 계도 조치 수준인 농사용 농막에 해당해 간단한 현장 확인으로도 가능하다는 게 여러 지자체 담당자들의 설명이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시골 농지는 농사 외 투기 가치가 크지도 않고, 불법 전용을 감수하면서 활용할 만한 여건도 드물다"며 "결국 심층조사는 불법 임대차에 해당하는 도지 관계를 확인하는 데 행정력이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댓글 많은 뉴스
자발적 퇴사 청년도 실업급여 준다…생애 1회, 월 최대 100만원
"스타벅스 가야지" 외쳤던 배재고 학생 2명, 결국 중징계
호남서 백지화된 댐 6곳 용수량 69만t… 반도체 클러스터 필요량 넘는다
[부산에도 밀리는 대구] 동성로 지나쳐도 해운대는 꼭 간다, 외국인 관광객 16배 차이
"부동산도 주식도 잘못했다"…국민 절반 이상, 정부 경제정책 '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