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된 말로 교육부가 '탄력'을 받은 모양이다.
2.17 사교육비 경감 대책을 발표한 지 100일을 맞은 지난 26일 2단계 대책을 내놓았다.
1단계 단기 대책이 가시적 성과를 내고 있으니 이제는 중.장기 과제에 역점을 두겠다는 것이다.
모처럼 교육부가 여론의 비판을 크게 받지 않고 소신 있게 정책을 추진하는 모습이 보기에 좋다.
하도 오랜만이라서일 것이다.
그동안 교육부가 뭐라도 할라 치면 여론들이 얼마나 씹어댔던가 생각해보면 다행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이 '탄력'이 아무리 반갑다고 해도 우려의 목소리를 언제까지 참을 수만은 없다.
한두 사람의 말을 인용해 근거도 없이 씹고 보자는 게 아니다.
교육계 내부에서 워낙 소리가 나오지 않으니 조금이라도 이를 전해보고자 하는 마음에서다.
사실 2.17 사교육비 경감 대책은 교육부 말대로 아무리 단기처방이라고 해도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세계적으로 창의성과 자율성을 갖춘 인재가 요구되는 시대에 전국의 모든 고교생들을 한 사람의 강의에 주목하도록 하는 획일적 방침은 발상 자체가 폭압적이다.
최고 수준의 강의를 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전국에 이토록 많은 학교를 두고 각기 다른 교사들에게 저 나름대로 가르치게 하고 있는가. 차라리 전국의 모든 교사들에게 똑같은 교수법과 교수 내용을 연수시키고 그대로 가르치게 할 일이다.
그런데 교육부는 2단계 대책에서 한 술 더 뜬다.
EBS 수능강의 교재뿐만 아니라 강사들의 강의 내용에서도 수능시험을 출제하겠다는 것이다.
EBS 교재를 일부 학원이 편법 강의해 또 다른 사교육을 조장한다는 지적 때문이라고 한다.
발표를 들은 고교 교사들은 "뭣 하러 학교에 나오라고 하나, 집에서 TV나 보라고 하지"라며 열을 올렸다.
"EBS 땜에 교사들 사기가 말이 아닙니다.
온통 EBS 얘기뿐이니 수업할 맛이 안 난다는군요. 상위권 학생들도 이번엔 불만이 많아요. 교재 보면 다 알 수 있는 내용들인데 수능에 출제된다니 안 봐도 될 걸 억지로 봐야 한다는 거죠". 한 고교 교장은 혀를 찼다.
현실적인 문제도 안고 있다.
수능시험 출제위원들이 어느 시간에 그 많은 분량의 EBS 강의를 보고 그에 맞춰 출제할 수 있다는 말인가. 자부심 강한 출제위원들이 EBS 강의를 보기나 하겠는가.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모의고사 출제 때조차 출제위원들이 EBS 교재 참고하기를 꺼려 애를 먹었다고 하니, 교육부 발표대로라면 EBS 강사가 직접 수능시험을 출제하는 수밖에 없어 보인다.
그런데도 교육부는 사교육비 경감 대책이 실효를 거두고 있다며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서울 지역 입시학원 수강생이 17% 감소하는 등 수능강의 후 사교육비가 약 20%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구체적인 수치까지 제시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학원 관계자들은 "장기적인 경기 침체로 인한 수강생 감소는 입시학원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 학원에서도 마찬가지"라며 아전인수식 해석에 냉소했다.
'사교육비'라는 용어만 나오면 '무조건 줄이고 보자'는 우리 국민의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여기에 기댄 교육부의 일방통행이 저 편한 쪽으로만 흘러간다면 그 길을 가야 하는 교사와 학생들의 헛된 수고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김재경기자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野, '피고인 대통령 당선 시 재판 중지' 법 개정 추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