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아빠가 읽어주는 전래동화

토란 캐러 온 꿩

꿩 알지? 산 속에 살면서 나무 사이를 설설 기어다니는 꿩 말이야. 이 꿩이 겁이 많아서, 하늘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하면 그냥 풀숲 사이에 머리를 처박고 벌벌 떨거든. 그러면서 울기는 '캐룩, 캐룩' 하고 울지. 그게 왜 그렇게 됐는지, 오늘은 그 이야기나 해 볼까.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 피울 적에 하늘나라 옥황상제의 딸이 병에 걸렸어. 그래서 옥황상제가 이것저것 좋다는 약을 다 구해다 먹이고 여기저기 용하다는 의원을 다 불러다 보이고 했는데, 그게 다 소용이 없어. 병이 낫지를 않고 점점 더해 가기만 하더란 말이지. 그 때문에 옥황상제가 근심에 싸여 있는데, 이 때 동해바다에 사는 청거북이가 와서 보더니,

"이 병에는 인간 세상에 나는 토란을 캐어다 먹이면 낫습니다".이런단 말이야. 그래서 옥황상제가 누구를 보낼까 하고 둘레를 둘러보니, 마침 옆에 꿩이 오색 깃털로 단장하고 잔뜩 뽐을 내며 서 있거든. 그래서 당장 꿩에게 명령을 했어.

"너는 지체 말고 인간 세상에 내려가서 토란을 캐어 오너라".

이렇게 해서 꿩이 옥황상제의 명을 받고 땅으로 내려오게 됐어. 그런데, 꿩이 토란을 구하러 여기저기 다니다 보니 인간 세상이 참 마음에 쏙 들거든. 들판에 가보면 곡식이며 나물이 지천으로 널려 있지, 산에 올라가 보면 온갖 나무와 향기로운 풀꽃들이 가득하지, 강가에 가 보면 갖가지 물고기와 조개들이 즐비하지, 바닷가에 가 보면 깎아지른 바위와 너른 모래밭이 경치가 그만이지, 보는 것마다 신기하고 가는 곳마다 멋이 철철 넘치니까 아주 마음을 쏙 빼앗긴 거지.

"야, 인간 세상은 참 살기 좋은 곳이로구나".

꿩이 그만 자기가 뭐하러 왔는지도 잊어버리고, 좋은 경치에 취해서 날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만 했어. 토란 캘 생각은 않고 말이야. 그러다 보니 날은 자꾸 가서 어느덧 열흘이 지나고 보름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났어. 그새 하늘나라 옥황상제의 딸은 병을 못 이기고 그만 죽어버렸지.

옥황상제의 딸이 죽었다는 소문은 퍼지고 퍼져서 땅에까지 전해졌어. 그 소문을 듣고서야 꿩은 정신이 번쩍 들었어.

"아이쿠, 내 정신 좀 봐. 토란 캐는 걸 그만 깜빡 잊고 있었네".

그렇지만 때는 이미 늦었잖아. 이제 토란을 캐 가지고 가 봐야 무슨 소용이 있어? 꿩은 제 할 일을 깜빡 잊고 놀러만 다닌 것을 뒤늦게 뉘우쳤지만, 그러면 뭐해? 엎질러진 물인걸.

이제 와서 하늘나라로 올라가자니 옥황상제 볼 낯이 없고, 꾸중들을까 봐 겁도 나고, 그래서 꿩은 내처 땅에 눌러앉아 살기로 했어. 그렇지만 늘 죄스러워서 하늘을 못 쳐다보고, 납작 엎드려 나무 사이를 설설 기어다니기만 하는 거지. 꿩이 산 속에 숨어서 잔솔밭을 설설 기어다니기 시작한 게 그 때부터래. 또, 날이 궂어 하늘에서 '우르르르' 하고 천둥이라도 치면, 옥황상제가 호통치는 소린 줄 알고 겁이 나서 풀숲에 머리를 처박고,

"캡니다, 캡니다".하는데, 토란을 캐고 있으니 벌주지 말라는 말이지, 그게. 그 소리가 '캐룩, 캐룩' 하는 것처럼 들리는 거래. 서정오(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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