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말 에세이-아주 특별한 초대

보이지 않는 베풂은 가치 있는 일이다.

평생 동안 축적해 온 지식을 사회에 환원한다면 이 또한 아름다운 일이다.

혜암 최춘해 선생이 이 일에 앞장서고 있다.

한평생 아동문학에 열정을 불지폈으며, 곁눈질 한 번 없이 동시를 가꾸어 왔다.

교육계에 헌신해 오다 정년 퇴직했으며, 고희가 지난 지도 이삼 년이 지났다.

이쯤 되면 남은 여생을 편안하게 쉬는 게 상례다.

그런데도 후진 양성을 위해 홀연히 무료봉사 대열에 뛰어들었다.

무료봉사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최춘해 아동문학 교실'이 문을 연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종강을 맞이했다.

제1기 수료생들이 '혜암아동문학회'를 결성하고 창간호 "엄마의 팔베개"를 출간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수료식 겸 출판기념회를 갖는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나에게 감사패를 전달한다고 한다.

몸둘 바를 모를 정도로 부끄럽다.

사무실 출입문에 '최춘해 아동문학 교실'이란 손바닥만한 아크릴 간판을 붙이고, 월요일마다 오전 동안 사무실을 강습 공간으로 제공한 것밖에 없다.

이에 비하면 얻은 것은 너무나 많다.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들과 호흡을 함께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가. 일을 하면서 사무실에서 공부하는 모습들만 바라보아도 한없이 즐거웠다.

사무실이 좁아서 늘 미안했다.

앉는 자리가 불편할 것 같아 그러하기도 했다.

만삭의 몸으로 계단을 오르내리던 수강생도 있었다.

그녀의 숨결이 거칠어질 때마다 나는 괜스레 마음 쓰이곤 했다.

그 힘을 덜어내기 위해 계단의 손잡이 구조물을 깨끗이 닦아 주기도 했다.

이 문학 교실 제1기생이 종강하던 날이다.

월요반 총무가 점심식사를 같이 하자는 제의를 해 왔다.

모처럼 가져 보는 한자리였다.

처음 만날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비 갠 날의 먼 산과 마주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아동문학을 배움으로써 표정이 밝아졌을까. 청초한 얼굴에 연신 해맑은 웃음이 피어나는 분들도 적지 않았다.

수강생들은 종강을 하고서도 헤어지기가 싫은 모양이었다.

이대로는 헤어질 수 없다며 나름대로 방안을 내놓았다.

매월 한두 차례씩 만나 작품평을 나누자고 했다.

혜암 선생을 자주 뵙기 위해서는 '그루' 근방에서 모이자고 했다.

수강생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던 혜암 선생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혜암 선생님! 지난해보다 더 젊어지신 것 같네요." 말이 끝나자마자 열네 명 수강생들의 눈길이 선생을 향하여 우르르 몰려가 한마디씩 하면서 웃음꽃을 피웠다.

전원이 앞다투어 한마디씩 하는 바람에 여름날 문득 장독대 위로 쏟아지던 소낙비 소리같이 들리기도 했다.

내용은 선생님한테 기(氣)를 빼앗겼다는 투정같이 들렸지만 모두가 즐거운 표정이었다.

가스레인지 위의 된장찌개가 뽀글대듯 수강생들 웃음소리가 한동안 들끓었다.

7월 초순인데도 도심의 더위는 불볕 같다.

성하의 숲처럼 정열적으로 살아온 사람들이 태양의 숨결 흐늘대는 길 위로 멀어져 갔다.

"잘해야 할 텐데." 혜암 선생이 제자들을 떠나 보내고 혼자 한 말이었다.

성혼한 자녀를 분가시키며 기도하는 어버이의 마음 같아 보였다.

그들을 먼발치에서 바라보았기 때문에 잘은 모르지만 일 년 사이에 쑥 커버린 것은 틀림없다.

전국에서 내로라 하는 등용문을 거쳐 문단에 이름표를 단 이도 꽤 있다고 한다.

혜암 선생께서 쏟은 정성만큼 이들의 앞날도 성하의 계절만큼 싱그럽게 꽃피우리라. 이 땅의 문단을 풍요롭게 하는 데도 이바지하게 되리라 믿는다.

이은재(그루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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