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에 대한 위기론이 팽배한 가운데 '기업경영(經營)'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잭 웰치로 대표되는 GE(제너럴일렉트릭) 경영기법이 화제를 일으킨 데 이어 일본의 도요타, 그리고 우리나라 삼성의 경영기법이 세계적으로 주목을 끌고 있다.
또 얼마 전에는 한국과 미국의 대기업들이 분식회계 등을 통한 부실경영으로 국가경제에 큰 타격을 입혔고, 그 여파로 윤리경영 바람이 경제계를 휩쓸기도 했다.
방송에서는 이병철.정주영식 경영기법을 담은 드라마가 등장, 시청자들의 주목을 끌고 있다.
이처럼 기업경영이 화두가 되는 시점에 출간된 'MIT 경영의 미래'는 향후 경영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상생'(相生)과 '신뢰'임을 역설하고 있다.
미국 메사추세츠공과대학(MIT) 슬론경영대학원 설립 50주년을 기념해 출간된 이 책에서 세계적 기업들의 CEO 및 경영학자들은 21세기 기업 경영의 패러다임을 일목요연하게 제시하고 있다.
◇신뢰만이 지속가능한 가치를 창출한다=CEO 취임 이후 관리자로서 탁월한 면모를 보여준 휴렛팩커드(HP) 칼리 피오리나. 슬론경영대학원 졸업생인 그녀는 먼저 "경영자는 자사의 주주와 고객과 종업원의 만족과 이익을 위해 봉사한다.
그러나 그 역(逆)은 성립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윤리라는 유전자 정보가 확고하게 자리잡지 않는 기업은 거대한 시장에서 가치를 창출하기가 어렵다"며 기업의 윤리성을 새삼 강조했다.
종업원, 고객, 협력업체, 주주 등 국내.외 구성원 전체로부터 기업이 신뢰를 얻어야 한다는 피오리나의 믿음은 종교적인 분위기까지 풍길 정도다.
"신뢰란 아무도 감시하지 않더라도 올바른 일을 한다는 믿음을 주는 것이지요. 신뢰란 자신이 하겠다고 말한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즉 자신의 말이 보증수표가 되는 것입니다.
"
미국을 200년간 강력하게 유지해온 힘도 '보이지 않는 손'이 아니라 '신뢰할 만한 악수'였다는 것이 피오리나의 얘기다.
그녀는 "기업은 모범적인 글로벌 시민의 역할을 수행하여 환경, 윤리, 노동, 인권 등의 분야에서 고도의 기준을 수립하고 타의 모범이 돼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성공하려면 지속적인 혁신 필요
2000년 4분기에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자 사임을 요구받는 등 주위에서 압력이 대단했다고 털어놓은 피오리나는 CEO의 근본적인 역할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정의를 내렸다.
"CEO의 임무는 분기별 수익을 지키는 일이 아니라 회사를 지킴으로써 몇몇 분기가 아닌 향후 10년간 지속 가능한 가치를 제공하는 일입니다".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 차량결함을 숨겼다 소비자들의 신뢰를 잃어 회사가 문을 닫을 처지에 놓인 일본 미쓰비시자동차의 사례를 보면 피오리나의 얘기는 매우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끊임없는 혁신만이 살길=GM( 제너럴모터스) CEO인 리처드 왜거너는 변화, 그리고 변화를 따라잡거나 앞서가는 데 바탕이 되는 혁신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몇 안되는 불변의 요소 중 하나가 변화이고,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면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예는 많습니다.
그 중 닷컴의 몰락은 최신 사례에 속하지요."
GM이 제품 혁신과 기업 혁신에 전념했기 때문에 세계 자동차 산업에서 선도적인 입지와 명성을 구축했다는 것이 왜거너의 진단이다.
'과거란 이따금 방문하기에는 좋지만, 영원히 살 만한 곳은 아니다'는 토머스 제퍼슨의 말을 인용한 왜거너는 "미래에도 성공하려면 지속적인 혁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건강한 자본주의'발전의 지침서
◇글로벌 시민의식을 확립하라=기업인이 아닌 코피 아난 UN사무총장의 '기업론'도 눈길을 끈다.
그는 "'올바른 일', 예컨대 생태 효율성의 추구나 적절한 작업환경의 조성은 기업의 직접적인 이해와 결부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공개성은 우리 시대의 화두"라고 정의하면서 "우리는 공개성이 발현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전 세계 국가와 민족은 보호무역의 시대로 퇴보하며, 상호 의존의 시대에 걸맞지 않게 국익이라는 협소한 관념을 유지하려고 글로벌 시민의식을 거부하는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아난 사무총장은 "기업은 고용과 투자와 성장의 확대에 그치지 말고 글로벌 시민의식을 함양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들 외에도 책에는 보잉, 도이체방크, 머크앤컴퍼니, 오비츠 등 세계적 기업의 CEO들과 로버트 브라운 MIT 부총장을 비롯한 MIT 교수진들이 제시하는 21세기 경영전략들이 담겨 있다.
연설문, 논문, 토론문 등 다양한 형식을 통해 세계화, 조직 설계, 마케팅, 기업 지배구조와 같은 기업경영과 관련된 모든 분야를 다루고 있어 '건강한 자본주의'의 발전을 위해 고민하고 노력하는 사람들은 읽어볼 만하다.
돈 만드는 기술만으로 기업을 경영하는 20세기형 기업인들이 아직까지도 득세하는 상황에서 기업은 '신뢰'를 바탕으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는 이 책의 메시지는 기업인들은 물론 경제주체 모두가 염두에 둬야 할 덕목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대현기자 sk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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