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츠 주머니엔 취재수첩, 손에는 볼펜, 목엔 줄 달린 카메라. 조윤설군은 기자가 되고 싶다. 오늘도 자신의 현장을 찾아다니며 취재하고 기사를 쓴다. 무심히 지나치기 십상인 사물에도 생각을 모은다. 수능시험이 100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현장은 책상머리에 있는 게 아니다. 만 17세, 아직 세상을 모르는 나이라고 치부해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생각이 깊고, 고집이 만만치 않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 기자가 되고 싶어
윤설이는 청소년 문제 전문기자를 꿈꾼다. 지난해 대구 청소년 자원봉사 센터에서 동아리 기자로 활동한 것이 계기가 됐다. 현재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중이다. 벌써 30여건의 기사를 썼고, 15건쯤이 보도됐다. 작지만 원고료도 받았다. 기사 끝에 이름 석자가 나왔을 땐 얼마나 가슴이 뛰던지….
윤설이는 자신의 눈높이에서 문제점을 찾고, 변화를 위해 몸을 아끼지 않는다. 어른들이 쉽게 놓치는 부분이다. 올해 초에 썼다는 서울의 한 궁궐 입장료 기사를 소개했다.
"안내판에 '중고생 얼마', '18∼20세 얼마' 라고 씌어 있더라고요. 중고생 나이지만 학교에 안 다니는 사람도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은 얼마를 주고 입장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어요. 소수를 배려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거죠."
이런 문제의식은 윤설이 자신이 비(非)학생 청소년이기 때문에 더 와닿는다고 했다. 윤설이는 건강 문제 때문에 고교 1학년때 학교를 그만뒀다. 힘든 과정을 거쳐 지난 5월엔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올해는 대학입시도 치른다.
# 준비와 관심분야
윤설이의 하루 일과는 또래 청소년들과 조금 다르다. 또래 고교생들이 입시공부에 매달리는 동안 그는 기사를 찾아 현장을 누빈다. 탄핵찬반 집회, 파병 찬반 집회 등 이슈가 될 만한 곳이면 어디든 달려간다. 기자로서의 첫 덕목인 '현장성'만은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스스로를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지난달엔 청소년 공동체 '반딧불이'에서 주관한 기자학교 과정도 마쳤다. 취재, 기사작성, 사진, 기자윤리 등에 대해 현직 언론인들의 강의를 들었다. 덕분에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막 써오던 기사작성법에서 탈피할 수 있었다고 한다.
꺼내보이는 명합집이 두툼했다. 벌써 받은 명함이 서른 장쯤 된단다. 기자로서의 중요한 덕목인 '사람에 대한 관심'도 넉넉해 보였다.
기자를 꿈꾸는 것 치고는 수줍은 성격 때문에 애를 많이 먹었다고 한다. 인터뷰를 할 때마다 말문이 턱턱 막혀 진땀 흘리는 일은 지금도 여전하다고 고백했다. 모르는 사람, 바쁘게 지나치는 사람에게 불쑥 질문을 던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더라는 것이다.
일과 가운데 빼놓지 않는 일은 스스로를 가치중립적 위치에 두는 노력이다. 같은 사안을 두고 서로 상반되는 주장을 꼭 챙겨 읽는다. 진보적인 인터넷 사이트, 개혁적인 신문사 토론방, 보수적인 신문사의 독자게시판 등을 매일매일 훑고 다닌다. 자신의 생각이 한쪽으로 기우는 것을 방지하면서, 사람들이 어떻게 자신의 주장를 펴나가는지 살펴보는 것은 큰 배움이자 즐거움이다.
윤설이의 관심분야는 청소년과 사회문제. 그는 현재 청소년 관련 문제점으로 높은 선거연령, 고교 평준화, 청소년의 사회참여 등을 꼽았다. 책을 읽고, 전문가들의 주장을 정리하고, 틈나는대로 각 지역의 청소년 단체 전문가나 또래 청소년들을 만난다. 집회를 기획하거나 세미나에 참석하기도 한다. 지난 4.15 총선 당일에는 대전에서 '선거연령 낮추기' 서명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 어른들의 걱정에 대해
윤설이의 미래 준비방식은 어른들의 생각과는 접점이 다르다. 그래서 부모님은 걱정이 많다. 취재한답시고 돌아다니는 것도 걱정이고, 집회나 모임에 관심을 갖는 것도 불만이다. 또래의 아이들이 입시공부에 밤잠을 설치는 것을 보면 더 그렇다.
그러나 윤설이는 자신도 치열하게 공부하는 중이라고 했다.
"학교 공부는 사회를 살아가는 기초적인 지식을 쌓는다는 점에서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자신이 생각하는 구체적인 미래가 있다면 일찍부터 여기에 집중하는 것도 절대 손해나는 일은 아니죠. 당장 책 한 줄 읽고 외우는 시간이 빠듯하지만, 제 꿈을 생각하면 집회에 참가하고 현장을 다니며 세상 보는 눈을 키우는 일도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배움이란 어디에서든 찾을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대학입시가 목전에 다가왔지만 불안하지는 않다고 했다. 또래들처럼 학교에 가고, 학원에 가고, 보충수업을 받진 않지만 진정한 '자율학습'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사람마다 세상을 사는 방식이 다를 수 있다고 말한다. 모든 청소년들이 가고 있는 길에서 벗어나 나름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 결코 잘못된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평탄한 길에서 벗어난 만큼 가시덤불과 잡초가 우거진 길일 수 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길이 그렇듯 헤치고 걷다보면 어느새 길이 되는 게 아니냐고 했다.
"자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우려에 대한 윤설이의 대답이다.
글·조두진 기자 earf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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