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공에도 길이 있을까. 길이 있기에 골문을 찾아 갈 수 있지. 공이 길을 잘 들어 골문을 찾을 때마다 사람들은 환호한다.
환호는 어디 붉은 악마뿐이랴. 허나 공이 길을 잘못 들어 골문을 찾지 못하고 엇길로 새면 사람들의 그 허망하고 아쉬워하는 모습은.
어제 새벽. 아테네. 우리들은 웃고 울었다.
덕분에 열대야를 식힌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더위를 되레 부채질한 이도 있었을 것이다.
무승부. 승부에 승부가 나지 않음이 어찌 축구공 탓이랴. 길 하나 똑바로 찾지 못했다고 축구공을 나무랄 수야.
그리스의 자살골이 터졌을 때. 그곳 제우스신은 과연 어떤 생각으로 이런 조화를 부렸을까. 큰 포물선을 그리며 그리스 골문 그물이 출렁일 때 오늘의 운세는 우리 것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경기는 끝나봐야 한다는 명언대로 끝났을 때는 '잘 싸웠다'로 위안을 삼아야 했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축구공에도 길이 있었고 당연히 그 길은 사람이 만들어야 했었다.
길에 관한 두 가지 산문집을 권하고 싶다.
박이문의 '길'과 안치운의 '옛길'. 문명비평가로 시인이며 철학자로 명망을 떨치고 있는 박이문 전 포항공대교수. 늘 사유하며 사색하고 마치 대덕의 한줌 사리 같은 투명하고 알 수 없는 위엄, 그러면서도 친근미 넘치는 풋풋한 결과물로 내 놓는다.
그의 책들은 까닭 없이 복잡하지 않고 또한 군더더기마저 없다.
그래서 쉽게 정리된 온갖 생각들은 반듯하고 더 많은 깊이 있는 삶의 방법들을 익히는 데 도움을 준다.
인간은 누구나 길 위에 서 있고, 누구나 길을 지나고 산다.
오래 전 나는 인간과 만물이 만든 길이 이 세계와 우주 속에 열려 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지금, 세계와 우주가 만든 길들이 인간과 만물 속에 열려 있음을 안다.
이 길 위에서 나는, 그리고 우리는 자신의 단 하나뿐인 인생을 살아간다.
본문 중에서 자주 인용되는 한 부분이다.
많은 독자들이 이 구절을 좋아한다.
이처럼 길은 우리들에게 가장 가깝고 없으면 안 되는 것이지만 그러나 이에 대해 대다수 사람들은 별로 생각하지 않고 살고 있다.
실은 그런 게 길인데. 그렇지만 지은이는 그 길속에서 일상의 풍부하고 다양한 삶의 편린들을 사색해 끌어낸다.
무엇을? 온갖 사람들의 성찰을. 심지어 서정과 지성까지 끌어낸다.
그것도 어렵지 않게.
'옛길'의 안치운. 그는 젊은 연극평론가다.
특히 이 산문집은 오지의 옛길만을 수년간 답사하면서 이미 희미해진 그 길들을 더듬고 아직까지 그 길 주위에 살고 있는 굳은살 박인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느낀 경험을 잔잔하면서도 정이 듬뿍 담긴 글 솜씨로 엮고 있다.
앞의 책 '길'이 깊이 있는 서양화를 보는 기분이라면 '옛길'은 마치 왕성한 한폭의 한국화를 보는 느낌이다.
책머리의 '옛길에 관한 사유'에서 지은이는 깊은 산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은 희미한 옛길이다.
길 옆에 숲과 나무가 있고, 길 끝에 집과 사람이 있다.
오지에 살면서 부대기를 일구었던 화전민, 흙과 나무로 지은 집들은 거의 사라졌다.
...화전민들이 살았던 곳은 세상의 끝인 오지였다.
그곳에서는 인공적인 것이 사람들을 지배하지 않는다.
그들이 살았던 깊은 산골은 결코 꺾이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경건한 곳이었다고 적고 있다.
정선에서 영월로, 동강을 따라와 소백과 태백사이 의풍리 옛길 등 6편으로 엮어져 있으며 한 걸음 한 걸음 밟아 그 소감을 피력한 청초한 글 솜씨가 돋보인다.
그냥 걸어만 가면 그것이 길이었다고 여긴 지금까지의 길에 대한 무심했던 자신들을 돌이켜보며 금방이라도 그 곳을 달려가고픈 마음이 솟구치는 책이다.
아니면 이미 그곳을 다녀 온 사람들은 아 이런 것을 빠뜨렸구나 하고 한탄할 만한 대목들이 여기저기 있어 또다시 떠나고 싶어질 게다.
길. 나서기만 하면 만나지는 길. 길 없이 걸을 수 있을까. 없을 텐 데도 많은 사람들은 걸으려 억지를 부린다.
그것은 만용. 길이 없으면 가지도 말라고 했지 않는가. 그런데도 우리들 주위에서는 길이 아닌 길을 가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왜 그들은 길이 아님을 뻔히 알면서도 가려 하는가. 길이 아닌 길은 없는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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