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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풍-잔두지련(棧豆之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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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전 유월의 한 신문을 뒤적여보니 'JP 명당찾아 부모 묘소 옮긴 뜻은 …'하는 제목의 정치기사가 눈에 들어온다. 부여에서 예산으로 선산을 옮긴 내용인데 당시 유운영 자민련 부대변인의 이장(移葬)의 변(辯)까지 인용해 놓았다. "많은 지관들이 천하명당이라고 권유했으나 여의치 않다가 윤년인 올해야 이장하게 됐습니다…."

JP가 그 다음해 대선에서 킹메이커가 아닌 '킹'으로의 변신을 꾀하는 것 아니냐는 세간의 입방아를 의식한듯 그는 "위치가 너무 높아 서해바다가 보일 정도고, 묘터도 30여평에 불과해 초라하다"고 굳이 변명을 늘어놓았다. 하긴, DJ도 97년 대선을 앞두고 지관의 권유에 따라 전라도 땅 부모 묘소를 경기도 용인으로 옮겼고 그 덕분(?)인지 대권을 거머쥐었으니 특정 사안을 두고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다.

다시 2004년으로 돌아와 10월2일자와 6일자 신문을 보면 '이회창 전 총재 선친묘 이장한 까닭은…'이란 기사가 실려있다. 대선 직전에 별세, 예산읍내에 조성해 놓은 부친의 묘를 1년5개월만에 10㎞ 떨어진 인근 신양면에, 그것도 언론이 6개월만에야 뒷북칠 정도로 '은밀하게' 이장했다는 내용이다.

문중 사람들은 아파트에서 500m 안이라 불법논란이 있어 옮겼다지만 "풍수적으로도 좋지않다는 소리까지 있었다"는 얘기고 보면 시중의 대권몽상론을 나무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정치를 떠난 사람이 '정치적으로 해석될 소지'를 남겼다면 그 또한 미련(未練)일 터이다. DJ와 JP의 그 '미련의 이장(移葬)'의 연장선상에 이 전총재가 서 있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미련'과 같은 뜻의 고사(故事)-노마(駑馬)의 '잔두지련(棧豆之戀)을 떠올린다. 사전은 '(늙은)말이 얼마 안남은 콩을 탐내어 마굿간을 떠나지 못함'으로 설명한다. 부둣가에서 배로 건너갈 수 있게 걸쳐놓은 임시방편의 다리가 잔교(棧橋)다. 끊어진 벼랑길에 나뭇가지 걸쳐만든 길이 잔도(棧道)다. 그래서 잔두(棧豆)는 치워버리면, 먹어버리면 곧 없어질 '얼마 안남은 콩'을 이름이다. 정치인들의 '잔두지련'은 국민을 불쌍하게 만든다.

말이 빗나갔다. 수목장(樹木葬)의 신선한 충격을 떠올리다 이에 대비되는 정치인들의 '잔두'에 마음이 어두워진 탓이다. 평생 나무만 연구했던 김장수 전 고대 학장은 죽어서 그가 아끼던 참나무 아래에 묻혔다. 봉분도 없고 비석도 없다. 다만 그 나무에 명패 하나 걸렸다. 졸부들의 호화분묘, 매명(賣名)의 엘리트가 수두룩한 세상에 던져진 조용한 감동이다.

1998년도 SK그룹 최종현 회장이 유언에 따라 화장(火葬)된 이후 화장문화가 기름에 불처럼 확 번진 건 사실인데, 문제는 "화장한 다음에 어떻게 하란 말이냐!"하는 유족들의 불만과 궁금증 또한 동시에 번졌다는 데에 있다. 정부가 그것을 풀어주지 못한 것이다.

사실 정부가 대책없이 화장을 장려하면서 나타난 납골의 빈부현상은 새로운 부작용이다. 공원묘지의 납골묘'납골함은 수십만원이지만, 어느 절간의 부도(浮屠)식 납골묘는 육칠백만원도 넘는다. 호화분묘가 말썽을 부리더니 이번엔 호화납골이 유족들을 화나게 만드는 것이다.

2년전, 화장후의 유골 처리방법 희망 1순위가 납골당, 2순위가 산골(散骨) 즉 '뿌리기'였다. 아마도 김장수 교수의 수목장 이후엔 이 순서가 바뀔 것 같다. 문제는 뿌리고 싶을 경우 어디서 어떻게 뿌려야 할지, 드라마 '완전한 사랑'의 차인표처럼 김희애를 눈덮인 지리산 꼭대기에서 멋있게 뿌려도 법에 저촉이 안되는지, 아무런 규정도 설명도 없으니 답답했던 것이다. 이 답답함 가운데 김 교수의 수목장은 한가지 해답을 준 것이다.

어찌보면 이 한국적인 매장풍습 자체가 '잔두지련'일지도 모르겠다. 명당찾기 또한 후손과 후세에 대한 미련과 집착의 한 표현이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SK 최종현 회장의 화장은 선구적이었다. 어머니와 장인'장모상을 화장으로 치른 고건 전 총리 가족의 화장 유언과 구본무 LG회장 손길승 전 SK회장, 가수 김흥국씨 등 경제계와 연예인들의 잇따른 화장 서약은 '마굿간에 남아있는 콩'에 대한 미련을 버린 용기였다. 그런데 왜 유독 정치인들은 콩에 대한 미련을 못버린채 마굿간 주위를 맴돌고 있는가? 다음 총선과 대선때 후보자들에게 자신의 사후(死後) 화장을 공약으로 내세우게해 보면 안될까? TV토론에서 그 대답을 들어보자. 그렇게만 되면 DJ와 JP와 이회창 전 총재가 집착했던 천하명당은 아무 소용이 없어지리라.

姜健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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