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자갈마당' 의 단상 1

'퐁당 퐁당 돌을 던지자'. 누나 몰래 돌을 던지면 살며시 퍼져나가던 파문. 동화 속 자갈돌이 속칭 '자갈마당'이란 곳에 오면 한 서린 돌이 된다. 원래 과수원이던 땅. 비만 오면 질어 자갈을 깔았다던가.

그러나 일설에는 밟으면 소리가 나기 때문에 도망 못 가도록 하기 위해 자갈을 깔았다고 한다. 동생과 고향 냇가 자갈길을 걸었을 소녀에게 그 자갈소리는 얼마나 무서운 굴레가 됐을까.

수많은 여인네들이 벼랑 끝 삶을 산 자갈마당. 지금은 자갈 대신 시멘트가 깔려 있지만, 그래도 도망은 엄두도 못 내고 부초처럼 삶을 맡기고 몸을 팔아야만 하는 곳이었다. '자갈마당'은 대구의 남자들에게는 성의 '등용문'(?)이며 통과의례의 장소였다.

지금은 도서관이 복잡하면 학교 앞 모텔에서 남녀가 사이좋게 시험공부를 하는 시대가 됐지만, 옛날에야 어디 그랬나? 비디오도 흔치 않아, 양키시장에서 흘러나온 외설잡지를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돌려보던 시대였다. 남녀는 부동석으로 한자리에 단 둘이 있을 수도 없었다.

성경험은 더더구나 힘들었다. 그러한 시기에 '자갈마당'은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총각딱지 뗄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골목입구에 '청소년 출입통제구역'이라고 크게 입간판이 서 있지만, 교복을 입던 시절에도 이 곳을 지난 아이들이 있었다. 담배를 빼 문 아가씨들이 아이들을 희롱한다. "얘, 이리 와봐!". 그러면 쭈뼛쭈뼛할 수밖에 없다. "고놈, 참 예쁘게 생겼네. 이리와 보래도 잡아 먹어". "저, 학생인데요". "임마, 학생은 X 없어?".

순전히 여자들의 치마 속이 궁금했던 아이들의 모험담이다. 그래도 인심 좋은 아가씨가 있어 아이들이 지나면 스커트를 걷어 올려 보여주기도 했다고 한다.

보통 '자갈마당'은 밤에 술을 마시고 들르는 곳이다. 그래서 정육점처럼 켜 놓은 붉은 등만 기억날 것이다. 붉은 등은 색을 왜곡한다. 흰 드레스마저 선홍빛이 났다. 짙은 화장도 흡사 연극무대의 분장처럼 화려하다. 저마다 눈에 뜨이는 치장을 한다.

거기에 비하면 출입하는 남자의 옷은 대부분 검은 색이다. 검은 색도 검고, 감색도 검게 보인다. 어두컴컴한 입구를 들어서는 남자들의 모습이 흡사 유령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낮의 풍경은 참 이국적이다. 일반적으로 상가는 간판이 사람을 압도한다. 그러나 이 곳에는 간판이 없다. 간판이라고 해야 몇 호, 몇 호라고 번호를 적어놓은 것이 고작이다. 간판 없이 줄지어 선 상가는 이곳뿐일 것이다.

예전에는 골목이 대부분 흙길이었다. 지금은 보도블럭을 깔아 흙을 덮었지만, 바닥을 온전히 시멘트로 발라 놓은 곳은 흔치 않았다. 비 개인 오후, 시멘트 바닥에 반들거리는 물기가 참 고왔다는 기억이 있다.

'자갈마당'의 색다른 풍경중 하나는 화분이 많았다는 것이다. 시멘트를 깔아 꽃을 심을 곳이 없어 그랬을까. 집집마다 화분을 내놓았다. 가을에는 국화 화분을 내 놓았고, 흙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꽃을 심었다. 누가 꽂아놓았는지, 나무 막대를 따라 나팔꽃이 올라간 모습도 보기 좋았다.

아마 정붙일 곳 없는 그곳을 꽃이라도 심어 위안을 삼으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흡사 킬러 레옹이 화분을 들고 다니며 온갖 정성을 쏟는 것이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다음주에 계속)

에로킹(에로영화 전문가)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