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과 수녀님의 사랑으로 제가 이 만큼 컸어요. 대학에 들어가고 훌륭한 사람이 돼서 꼭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
올해 고등학교 1학년인 지영(16·여·가명)이는 '절집 아이'다.
4살 때 엄마가 대구시내 한 조용한 암자에 맡기고 간 뒤 쭈욱 주지스님 손에 자랐다.
엄마는 그 이듬해 병이 심해져 "아이를 잘 부탁한다"는 유언을 스님에게 남기고 하늘나라로 떠났다.
스님은 젖먹이를 자신의 동거인으로 올렸다.
그리고 지영이와 노스님의 아름다운 '동거'가 시작됐다.
"절집 아이들은 다 착해요." 유난히 눈이 맑은 노스님은 지영이 말고도 가정형편이 어려운 여러 명의 아이들을 키웠다고 했다.
절 생활이 답답하다며 고등학교 졸업하기가 무섭게 달아나는 언니들과 달리 지영이는 노스님을 잘 따랐다.
아침마다 빗자루로 절 마당을 유리알처럼 쓸었다.
그러던 지영이도 한차례 방황하던 때가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일. 엄격한 절 생활이 힘들었을까, 아니면 사춘기 탓이었을까. 그해 지영이는 갑자기 절을 나갔고 가톨릭재단에서 가출청소년을 위해 운영하는 대구시내의 한 쉼터에서 신부님과 수녀님 손에 4년을 지냈다.
그 동안 지영이는 쭈뼛거리며 두 번 스님을 찾아왔었다.
"한 번은 '종교를 바꿨어요'하면서 왔더라구. 그래서 '네가 부처님을 믿든 하느님을 믿든 다 네 마음'이라고 했지. 작년에는 고등학교에 들어간다며 교복을 사 달라네. 아무 말 않고 돈을 쥐어줬어."
그리고 지영이는 올해 돌아왔다.
코흘리개 초등학생은 여고생이 돼 있었다.
착하고 건강하게 자라준 모습이 고마워 스님은 일언반구 야단도 치지 않았다.
"내가 키웠던 아인데…. 내가 거둬야지요."
지영이의 '바로서기'에는 또 한 명의 은인이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때 담임인 이영숙(48·여) 선생님. 졸업 이후에도 줄곧 지영이를 따뜻하게 품어왔다.
외로움을 탈 때면 고민도 들어주고 얼마 안 되는 용돈도 쥐어 보냈다.
"학교에서 도시락과 우유를 받는데, 그게 지영이는 무료였어요. 근데 어린 마음에 미안했나봐요. '저는 공짜로 받는게 싫어요'하더니 일년 내내 우리 반 배식대 청소를 도맡아 했어요."
지영이는 요즘 밤 10시가 돼야 '집'으로 돌아온다.
하교후에 절 근처에 있는 공공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온다.
16등이던 성적이 지난 중간고사때는 20등 밖으로 떨어졌다.
학원도 다니고 싶고 요즘 반 아이들이 다 하는 인터넷 교육방송도 듣고 싶다.
"이번에 시험성적이 오르면 스님한테 꼭 사 달라고 할 게 있다더군요. 그게 바로 컴퓨터였어요." 선생님은 이런 사연을 수성구청 홈페이지에 실었다.
'성실한 여학생이 있으니 행여 남는 컴퓨터가 있으면 기증해달라'는 말과 함께.
"어려운 가정형편을 탓하며 어긋나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앞으로도 지영이가 계속 맑고 아름다운 사람으로 클 수 있도록 따뜻한 도움을 기다릴 뿐이지요." 최병고기자 cb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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