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엽 벼슬을 사기 위해 나귀에 돈을 싣고 한양으로 떠나던 한 앳된 선비가 어느 언덕배기에서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다.
빚을 갚지 못한 못난 아비가 과년한 딸을 어느 졸부에게 빼앗길 상황이었다.
선비는 '나는 벼슬을 사기 위해 돈을 바치는데 저 사람은 돈이 없어 딸을 잃는구나'라고 생각하며 순간 세상사에 회의를 느꼈다.
그는 갖고 있던 돈으로 딸을 살린 뒤 고향으로 돌아와 초야에 묻혀 살았다.
은혜를 입은 여인은 이름도 성도 모르는 그 도령을 위해 매일 밤 언덕에 올라 천지신명께 기도를 올렸다.
세월은 흘러 어느 해 동짓날 밤 선비는 꿈에서 소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인네를 보았다.
자세히 살펴보니 언젠가 자신이 도와줬던 그 처자였다.
소복 입은 모습이 수상쩍어 그날 그 언덕에 가 보았더니 그 여인은 기도를 올리다 얼어죽어 있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선비는 여인을 부둥켜 안고 울다 지쳐 쓰러져 결국 숨을 거두었고, 이 둘은 회화나무 두 그루가 돼 못다한 사랑을 하게 됐다.
'
서구 평리3동 당산고개에는 낮은 주택들 속에 한 그루 회화나무가 세월의 모진 풍상을 이겨내고 떡하니 서 있다.
일명 할배나무. 인근 주민들은 그 선비의 넋이라고 믿고 있다.
어른 두 명이 간신히 안을 수 있는 둘레에 12m의 장신(?) 나무는 아직도 동네의 터줏대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곳에 드나들려면 할배한테 허락을 받아야 해. 2년 전 나도 떠나려다 할배가 내 다리를 잡아서 무릎을 쓸 수가 없어 결국 못떠났지. 영험한 영감이야."
7년째 인근에서 점집을 하고 있는 용수보살(47)은 할배나무의 용함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15일 오후 찾아간 할배나무 근처에는 군데군데 촛불을 피운 흔적과 함께 반쯤 탄 향들이 꽂혀져 있었다.
물이 반쯤 담긴 밥그릇도 지난 밤 누군가가 몰래 기도를 올리고는 떠났음을 짐작게 했다.
거의 40여년째 이곳에서 살고 있는 박모(55)씨는 어릴 적 기억이 생생하다.
집이 듬성듬성 있던 이곳에 버티고 선 두 그루 당산나무는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어른들의 사랑채였다.
무더운 여름이면 대낮부터 주민들이 나무 그늘 아래 모여 바쁜 한숨을 돌렸고 평상과 돗자리 위에서 노곤한 삶을 얘기했다.
"10여년 전 할매나무가 병해충으로 시들시들하더니 그만 죽어버렸죠. 기도를 너무 올려서인지 속이 비어 있었어. 할배나무도 조금씩 기운을 잃는 듯 잎이 시들시들해져 마음이 아파요."
주민들은 할배나무가 5, 6년 전 도로를 포장하고 주택이 들어서기 시작한 후부터 뿌리가 더 뻗지 못해 영양상태가 고르지 못하다고 전했다.
지금도 이 마을은 해마다 정월 대보름(음력 1월14일)에 당산나무 아래서 당제를 지내고 금줄을 쳐 놓는다.
너른 들판을 끼고 있는 곳에 세워진 마을이라 '평리(坪里)동'이라 불렸다는 마을에서 할배나무는 지금도 이 동네를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다.
서구청은 지난 1982년 두 회화나무를 보호수로 지정했고 지난 10월 말 생육환경 개선을 위해 대구시에 예산을 요청했다.
서상현기자 ssa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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