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길 위의 삶-(12)캄보디아-시엠립(Siem Reap)

태국 방콕의 카오산 로드(Khosan Road)를 새벽에 떠난 버스는 4시간을 넘게 달린 끝에 국경도시 아란야프라텟(Aranyaphrathet)에 닿는다.

캄보디아 내전 내내 '죽음의 길'이라 불리던 태국과 앙코르를 잇는 유일한 육로를 막 들어서는 참이다.

출국 스탬프를 찍자마자 시엠립으로 가는 차량을 호객하는 이들이 달라붙는다.

캄보디아의 국경 도시 뽀이(Poipet)를 오가는 사람들의 분주한 모습은 전쟁이 끝났음을 알려주지만 그들의 고단한 얼굴에는 아직도 아물지 않은 깊은 상처가 남아있다.

입국사무소로 가는 길 양쪽 편에 늘어선 현대식 건물은 카지노다.

비닐 봉투며, 종이가 바람에 쓸려 날리는 거리의 풍경과는 달리, 입구는 인간의 욕망을 빨아들이듯 검은색 유리로 치장되어 있다.

자국에서 카지노가 금지되어 있는 태국인들을 위한 카지노, 그 앞의 도로에서 힘겹게 하루를 살아가는 캄보디아 사람들의 모습, 자신들의 의지와는 다른 역사를 써온 캄보디아 근현대사의 또 다른 연장은 아닌지 안타깝다.

◇ 양민 200만명 살해한 킬링필드

대형 트럭들로 인해 깊게 파인 붉은 흙먼지 길을 파도타기를 하듯 차는 달린다.

이런 속도라면 해질녘에야 시엠립에 닿지 않을까 싶지만 운전기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음악에 맞춰 핸들을 두드리고 있다.

그에게는 하루의 일과를 끝내는 느긋한 여유가 있어 보인다.

전쟁이 끝났다고는 하나 아직도 밤이 되면 오가기를 꺼려하는 탓에 그는 시엠립에 도착하는 것으로 오늘 일이 끝나게 되는 것이다.

아! 그러나 오로지 팔 것이라고는 자신의 노동력뿐인 노동자에게 노동의 시간은 얼마나 가혹하고 고통스러운 것인가? 페트병에 든 기름을 깔때기에 부어 넣어 주는 주유소(?)에서 그는 운행 시간을 체크하는 사람에게 깍듯하게 인사를 한다.

분명 정해진 시간에 도착할 수밖에 없는데도 통제가 노동력을 증대시킬 수 있다고 믿는 어리석음이 감시의 눈길을 늦추지 않는 것이다.

결국 그는 씨엠립에 도착하면 일을 끝내는 것이 아니라 회사가 정한 시간까지는 다른 일을 계속해야 하는 것이다.

어쩌면 그의 여유로움은 단지 자신의 울타리에 닿는다는 작은 안도감 때문인지도 모른다.

뜨거운 햇살을 지우기에는 아직 어둠이 얕다.

집으로 돌아가는 자전거의 행렬이 분주하다.

네거리에 걸린 신호등은 다음 신호까지 얼마나 남았는지를 숫자로 알려주고 있다.

붉은 신호등 옆에 변하는 숫자는 한때 이 나라를 야만으로 이끌었던 세월을 연상하게 한다.

캄보디아의 두 번째 도시 시엠립에서 아름다운 앙코르를 보게 될 설렘에 앞서 흉흉한 소문으로 떠돌던 킬링필드의 슬픔을 먼저 떠올리는 것은 삐딱한 여행자의 역시 삐딱한 시선 탓이다.

킬링필드는 1980년대 중반 미국에서 만든 영화였지만 캄보디아의 비극의 역사를 증언하는 이름이다.

하지만 완전한 공산주의 건설을 꿈꾸었던 "폴 포트"와 크메르 루주가 자행한 양민 200만명을 살해한 짐승의 역사, 킬링필드는 한편으로는 사실이지만 한편으로는 진실을 은폐한 음모이다.

베트남 전을 배경으로 한 미국 영화가, 존재하지도 않는 열대 밀림 속에서 악전고투하는 미군을 그리고 있는 것처럼 영화 "킬링필드" 또한 폴 포트의 학살을 앞세워 미국이 자행한 전쟁범죄를 은폐하는데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 앙코르 와트 벽엔 수천개 압사라

캄보디아의 양민학살은 1969년에서 1979년 사이에 서로 다른 두 집단에 의해 자행되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1969년에서 1973년 사이에 미국은 캄보디아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베트콩에 대한 보복으로 캄보디아에 대한 공습을 시작해 80만명에 가까운 무고한 양민을 학살했다.

이 공습에는 1969년 북한이 미군 정찰기를 격추시킨 앙갚음으로 폭격한 웃지 못할 공습도 포함되어 있으니 미국에게 있어 캄보디아 사람들이 가히 어떤 대상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킬링필드에 이 사실은 숨겨져 있을 뿐 아니라 오히려 1975년에서 1979년 크메르 루주의 집권 기간에 자행된 학살만이 죄악의 전부인 것처럼 다루어져 있다.

미국에게는 그것이 공산주의라는 이념 아래 행해진 학살이고 동족 간의 살상이라는 점에서 영화나 선전의 도구로의 이용이 쉬웠다.

또한 그것이 강조되면 될수록 자신들의 범죄는 묻혀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이 저지른 만행이 크메르 루주의 책임으로 돌려져서는 안 된다.

그 어떠한 인간의 역사에서도 아무런 이유 없는 폭격으로 살해된 죽음이 잊혀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미국이나 폴 포트가 저지른 죄악의 경중을 따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다만 여행이 길을 묻고 찾는 것이라면 길 위의 역사를 바로 잡지는 못하더라도 바로 보려는 노력은 여행자의 몫이 아니던가?

이층 숙소에 짐을 풀고 내려오자 갑자기 폭우가 쏟아진다.

거리에 벌거벗은 아이들이 놀고 있다.

포장되지 않은 도로에 벌거벗은 아이들에게는 이념도 권력도 없다.

단지 맑은 웃음만이 가득할 뿐이다.

바욘 레스토랑(Bayon Restaurant)으로 향한다.

오후 7시에 공연되는 압사라(Apsara) 춤을 보러 가는 길이다.

압사라는 앙코르 유적의 사원에 새겨진 신을 위해 춤을 추는 무용수를 말한다.

힌두교의 창조신화에서 탄생한 압사라는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

압사라 춤의 특징은 손짓과 발짓에 있다.

손목과 발목을 들고 몸을 휘는 동작은 그 하나하나가 수화(手話)라고 한다.

앙코르 와트 벽에 새겨진 수천 개의 압사라 중에 그 어느 하나도 똑 같은 것이 없다고 하니 부조를 새긴 장인과 신의 대화가 얼마나 충만했는지 짐작할 만하다.

뷔페가 차려진 레스토랑은 이미 여행자들로 가득 차 있다.

무용의 내용은 라마야나(Ramayana))라는 힌두 신화의 내용을 재현한 것이지만 그 신화 사이에 등장하는 백성들의 이야기와 음악이 즐겁다.

상징적인 신의 이야기와 느린 배경 음악, 사실적인 백성들의 이야기와 발랄한 배경음악, 후자에 애정이 가는 것은 집단성이 가지는 아름다움이기도 하고 여행자가 늘 꽃보다 단풍을 사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신이 아닌 인간을 즐겁게 한 압사라 탓이었을까? 공연이 끝난, 비 갠 하늘엔 그믐달이 애처롭다.

◇ 유아매춘 호객꾼 떼느라 진땀

레스토랑 밖에 늘어선 오토바이꾼들의 호객행위를 뿌리치고 이미 어둠이 깃든 구 시장(Old Market)을 무작정 걷는다.

길게 늘어선 포장마차에서 사람들이 때늦은 저녁을 먹고 있다.

생각 없이 걷다보니 갑자기 길이 생경하다.

왔던 길과 전혀 다른 엉뚱한 길이다.

어둡고 침침한 거리 양편에 여자들이 의자를 내어 놓고 행인을 부르고 있다.

홍등가임에 분명한데 돌아가기에는 왔던 길이 너무 멀다.

가로질러 가는 중에 한 사내가 옆에 붙는다.

외국인이 밤늦게 혼자 이 거리에 온 이유가 뻔한 것 아니냐는 투로 그는 여자를 권한다.

아니 여자 아이를 권한다.

유아 매춘의 현장이다.

이미 국경에서 나눠주는 유아 매춘에 대한 경고문을 읽은 적이 있지만 인도차이나 반도(캄보디아, 베트남, 태국, 미얀마)의 유아 매춘은 심각하기 그지없다.

15세 미만의 여자 아이들을 성매매로 내모는 인간의 추악한 욕망은 끝을 알 수 없다.

손사래를 쳐보지만 사내는 다 그런 것 아니냐며 "에브리싱 노프라브럼(Everything No Problem)"을 속삭인다.

개인의 이기심만을 추구하는 자본주의가 낳은 기형이 너무 아프다.

끝까지 달라붙는 사내를 떼어내느라 땀에 젖어 도착한 숙소의 카페에는 여행객인 듯한 남녀 두 쌍이 앙코르 맥주를 병째로 마시며 내기당구를 치고 있다.

당구대 옆에 쌓여 있는 달러는 이 나라 사람들의 평균 월급을 이미 넘어서 있다.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아니 캄보디아는 이제 다시 전쟁을 치러야만 한다.

자신들의 의지와는 다르게 쓰였던 역사와 싸워야 하고 아이들의 맑은 영혼을 해치려는 자본주의의 첨병들과 싸워야 한다.

폐허가 된 사원을 일으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에 의해 그들의 미래가 덧없이 스러져 버린다면 앙코르는 그야말로 돌 더미에 지나지 않을는지도 모른다.

설탕을 넣지 않은 커피가 유달리 쓰다.

사진설명 : 압사라 춤 공연.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