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우리는 소외된 사람 돕기에 극성 떨죠"

다음 카페 '손잡고 가요'

"저희 모임은 별로 재미없는 곳이에요. 이웃들과 손을 맞잡고 함께 가기 위해 모인 만큼 친목과는 거리가 멀죠. 회원들끼리 얼굴은커녕 진짜 이름도 잘 모른답니다.

"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 카페 '손잡고 가요'(cafe.daum.net/sarangelan) 회원인 김혜영(31·여·대구 수성구청 공무원)씨는 모임에서 활동한 지 2년이 됐지만 기억나는 추억이 없다며 조금은 볼멘 목소리이다.

하지만 더불어 사는 길을 찾았기 때문일까. 표정만큼은 넉넉해 보였다.

"사회복지사로 일하면서 어려운 이웃을 참 많이 봐요. 하지만 법의 보호망 밖에 있는 분들을 도울 길은 정말 막막하죠. 순수한 마음으로 이웃을 찾아나서는 저희 회원들을 보며 오히려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자'는 소박한 취지로 지난 2001년 8월 결성된 '손잡고 가요'는 김씨의 말대로 도움이 필요한 이웃이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나타나는 '해결사' 노릇을 자처하고 있다.

400명에 이르는 회원들은 1천원부터 수십만원까지 각자 형편에 따라 회비를 내고 모든 회비의 입금과 지출 현황은 매달 카페 게시판에 게시한다.

이 모임의 목표도 1천원씩 회비를 내는 회원 1만명 확보다.

하지만 이들은 회비를 거둬 경제적인 도움을 주는데 결코 만족하지 않고 있다.

자신들의 삶 속에서 더 자연스럽게 이웃과 가까워지려하고 있는 것. 교사들은 학생들을 가르치고 의사·간호사는 환자들의 치료를 돕고 주유소 사장님은 기름을 나눠주고 식당 사장님은 맛있는 식사를 만들어주고….

대구 '자비의 집' 무료급식 자원봉사를 하다 지난 2001년 이 모임에 우연히 가입하게 됐다는 박대범(31) 변호사도 대구여성장애인연대, 대한사회복지회 혜림원 고문 변호사를 맡아 안그래도 바쁜 마당에 최근에는 과외교사까지 겸직하고 있다.

울릉도에서 온 여고생 곽모(17)양 자매가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학원을 다니지 못해 안타깝다는 한 회원의 글을 읽고 매주 토요일마다 집과 사무실이 있는 구미에서 대구까지 와 세시간씩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것.

박 변호사는 "사법시험 합격소식도 무료급식 봉사를 하다 연락받아서 그런지 요즘엔 본업보다 사회복지 쪽에 더 관심이 많다는 핀잔 아닌 핀잔도 듣는다"며 "산다는 재미가 이런 게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 모임을 이끌고 있는 엄지호(58) 경북도 노인복지과장은 "회원들이 저마다 주특기(?)를 살려 이웃들을 돕고 있는 것은 물질적으로 남을 돕는 것보다 조금이라도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자는 것이 모임의 근본 취지이기 때문"이라며 "누구나 다른 누군가에겐 소중한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거들었다.

회원들의 정성도 차라리 극성(?)에 가깝다는 것이 회원들의 자평. 주변에 어떠 어떠한 도움이 필요한 이웃이 있다는 글이 카페에 올라오는 순간 회원들의 성금과 자원봉사 신청이 쇄도, 거의 하루만에 문제를 해결해줄 정도라는 것. 지금까지 카페에 올라 온 사연들을 거의 100% 해결해 줬다는 것도 '손잡고 가요'의 자랑.

최근에는 회원 6명이 전북 무주에 있는 고랭지 채소밭에 가서 1박2일 동안 밭일을 하기도 했다.

무주에 사는 한 회원이 배추·무값 폭락으로 어려움을 겪는 농민이 있다는 글을 올렸기 때문. 회원들은 밭을 갈아 엎기 직전에 몰린 농가에 실비로 직접 배추 3천포기와 무 1천개를 수확, 회원이 제공한 트럭을 이용해 대구시내 사회복지관과 무료급식소 등에 전달했다.

또 지난 6월에는 회원들이 버스를 동원해 경북 고령과 대구 가창 등지로 나가 직접 뜯은 쑥으로 떡 6가마니를 만들어 복지시설을 찾기도 했으며 지난달 말에는 대구지역 쪽방 주민 98가구에 연탄 200장씩을 전달하기도 했다.

이 밖에 지난 7월에는 기초생활수급권자이면서 화재로 집을 잃어버린 대구시 북구 침산동 한모(36)씨의 사연이 알려지자 회원들이 이틀만에 세탁기·냉장고·이불 등 가재도구 대부분을 십시일반으로 도왔고 작년 12월에는 900만원의 성금으로 대구의 한 영구임대아파트 30여가구 주민들의 밀린 아파트 관리비를 지원했다.

미혼모 보호시설인 대구 혜림원 이석임(44·여) 원장은 "회원들이 성금을 낼 때마다 바로바로 이웃돕기를 하는 바람에 모금계좌 잔고는 항상 바닥이지만 따뜻한 마음만은 넘쳐난다"며 "요즘에는 지역뿐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회원들이 가입, 지난해보다 회원이 두배 이상 늘었다"고 자랑했다.

특히 요즘엔 8세 꼬마부터 중학생, 고등학생까지 신세대들의 참여가 늘어 회원들을 기쁘게 하고 있다.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입장과 생활을 이해해 가는 과정은 이 모임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덤. 교수와 농민, 공사장 인부와 변호사, 사회복지사와 간호사가 격식이나 아무 이해관계 없이 만나 허심탄회하게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살아가고 있다.

대구 북구청 공무원인 박경아(36·여)씨는 "이웃에 대한 관심은 많았지만 내가 남을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미처 몰라 망설이기만 했었다"며 "그동안 내 삶 속에만 머물러 있다가 이제야 진짜 세상 속으로 들어온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상헌기자 davai@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