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1년 07:50분(현지 시각), 06:00시에 출격한 일본 해군 소속 비행기 170여 대의 공격부대가 하와이의 진주만항에 정박해 있던 미 해군 함정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유럽의 전화(戰火)가 태평양으로 확대되는 것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이 공격은 미국이 일본에 대해 경제적인 고립정책을 단행하면서 계획됐다. 당시 삼국동맹을 배경으로 중국대륙 침략 중이던 일본을 견제하고자 미국은 일본에 고철, 석유의 수출을 중단시켰다. 고철 수출중단 조치는 큰 타격이 아니었지만, 석유 수출중단은 얘기가 달랐다. 일본이 이미 만들어놓은 엄청난 규모의 전쟁물자에 석유가 없으면 커다란 고철에 불과했기 때문. 일본은 자신들의 의견을 관철시키고, 동남아 지역에서 새로운 자원을 확보하고자 전쟁을 일으키기로 결심했다. 미국과의 전쟁에서 정공법으론 이길 방법이 없다는 판단에 일본은 이른 시간에 미국의 기를 꺾고, 전쟁을 종결시키기 위해 기습공격을 감행했던 것이다.
세계 해전사에 길이 남을 정도의 성공에도 불구, 이른 시일 내에 재건한 미 해군이 엄청난 물자를 등에 업고 대공세를 펼치자 일본은 태평양 일대의 세력권을 모두 내주게 된다. 미군 측의 판단착오로 거둔 성과였지만, 전쟁 중 일본군 측의 판단착오로 인해 전쟁 결과는 뒤집어졌다.
▲1949년 장제스의 중국 국민당 정부, 대만으로 쫓겨남 ▲1970년 빌리 브란트 서독총리, 폴란드 유대인 위령탑 앞에 무릎 꿇고 나치 만행 사죄 ▲1988년 소련 아르메니아에 대지진 ▲1994년 정부, 삼성그룹의 자동차 시장 신규진출 허용
조문호기자 news119@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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