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희망편지-몇 학년까지 세계 최고?

홍보판촉원, 피부미용'체형 관리사, 국악인, 바텐더, 시각디자이너, 큐레이터….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5년 뒤 가장 유망할 것으로 꼽은 직업들이다. 대학과 학과 선택을 앞둔 고교생들이나 진학'진로지도 교사 등을 위해 이달 초 전국 고교에 배포한 지침서인 '미래의 직업세계 2005'에 소개된 내용이다.

흥미로운 내용이지만 아쉽게도 지원할 대학 선택을 앞둔 수험생들에게는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적성이나 전망에 대한 모색은커녕 14일 발표되는 수능 점수와 내신 성적 등 자신의 점수로 합격 가능한 대학을 찾기에도 바쁜 상황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 같은 자료는 중학교 3학년생이나 고교 1학년생들을 대상으로 제작돼야 하고, 수업이나 상담 등을 통해 적극 활용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7차 교육과정 시행의 기본 이념인 '선택과 집중'이 제대로 구현되기 위해서는 직업과 학과에 대한 이해, 자신의 흥미와 적성 파악이 우선돼야 하고 이를 토대로 선택 분야와 이수 과목이 결정돼야 한다.

3년에 걸쳐 올해로 완결된 고교의 7차 교육과정 도입은 교육계에 상당한 기대를 불러왔다. 고교 1학년 때까지 공통 과목을 배운 학생들이 원하는 분야를 선택해 2, 3학년 때는 필요한 과목만 듣고, 이를 대학 교육과 직결시킴으로써 사회가 원하는 인재로 양성한다는 구도는 획일적인 고교 교육을 다양화하고 대학 입시의 부담도 한층 덜어줄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시행 결과는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정작 교육 당국과 학교는 학생들의 진로나 직업 교육에 투자할 인력도 시간도 없다며 외면해왔다. 고교 2, 3학년 과정도 외견상 기존 인문계와 자연계에서 사회, 과학 등 3~5개 분야로 나눠지고 선택 과목 개설 숫자가 크게 늘었지만, 학생들에게는 달라진 게 없었다.

한 연구에 따르면 7차 교육과정이 비교적 잘 시행되는 서울 한 고교의 경우 인문'사회'자연물리'자연화학'미술 등 5개 과정에 걸쳐 44개 과목이 개설돼 있다. 이에 비해 비슷한 규모의 미국 한 공립고는 영역별'수준별'종류별로 무려 200개 이상의 교과목을 운영하고 있다.(김정원, 교육개발 31호)

이는 우리 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는 범위가 특정 과정에 그칠 뿐 다양한 교과목까지 미치지 못 하는 현실을 보여준다. 두 학교의 교직원 수가 96명 대 188명이라는 점은 그 원인을 짐작하게 한다. 7차 교육과정의 시행에도 불구하고 수능과 내신 성적에 따른 줄 세우기식 대학입시가 여전한 이유도 여기서 비롯되는 것이다.

얼마 전 우리 고교 1학년생들의 학업 성취도가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소식을 접하고 흐뭇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현실이 바뀌지 않는 한 우리 학생들의 세계 최고 수준은 꼭 그 시기까지 뿐일 거라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그런데 교육부는 엉뚱하게도 이제 남은 게 대학 교육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구조개혁뿐이라며 장관 서한문을 내는 등 열을 올리고 있다. 치밀한 반성은 없고 정책적 꿍꿍이만 보이는 듯해 씁쓸하다.

김재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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