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득한 꿈길에 누군가 방문을 두드린다. 앙코르 와트의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에 깨워줄 것을 부탁한 것이 생각나 겨우 눈을 떠, 고양이 세수로 숙소를 나선다. 함께 차를 예약한 한국인 여행자들은 밤새 술을 마셨는지 졸음에 겨워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이다. 그들은 이미 앙코르에 지쳐 있다. 어제 앙코르 톰을 돌면서 "가도 가도 끝도 없는 똑 같은 돌무더기"라며 시큰둥하더니 결국 내일 새벽 태국으로 가는 버스표를 예약했다.
어제 하루 만에 돌아간 여행자들이나 그들에게는 아마 그 시간만큼의 인연이 앙코르에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앙코르라는 그 이름처럼 행여 다시 인연이 닿아 더 오랜 시간이 허락될지도 역시 모르는 일이다. 결국 그 인연의 시간이란 일주일이든 한달이든 아니 단 하루일지라도 그것을 만드는 사람의 몫이다. 무엇이나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앙코르는 애정에 따라 때로는 돌무더기로, 때로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다가온다. 앙코르는 얼마 보았냐가 아니라 어떻게 보았느냐가 중요한 것임은 물론이다.
새벽 5시도 채 되지 않았지만 거리에는 여행자들의 일출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바쁘다. 과거가 현재를 먹여 살리는 셈이지만 역시 잠이 부족한 현재가 그리 만만한 것은 아니다.
앙코르 와트가 앙코르 유적을 대표하는 것은 앙코르 제국(크메르 제국)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건축되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도 그 양식이 사원인지 무덤인지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지만 자신이 힌두교의 비슈누의 화신이기를 바랐던 수리야바르만 2세였고 보면 생전에는 신전으로, 생후에는 자신의 무덤으로 사용된 것이 확실해 보인다. 해서 출입문이 다른 사원들과 달리 죽음을 상징하는 서쪽으로 나 있고 회랑의 부조도 왼쪽에서 오른 쪽으로 새겨져 있다.
200m의 폭을 지닌 해자 위로 긴 다리가 어둠을 밀어내며 모습을 드러낸다. 세계 최대, 혹은 불가사의라는 수식어는 이미 중요하지 않다. 넓이 12m, 두께 5m의 사암으로 이루어진 길이 250m의 다리는 그저 시작에 불과하다. 어둠을 뿌리치는 여명과 함께 숨 가쁘게 다리를 건너자 높이가 다른 세 개의 탑을 머리에 인 기다란 고프라(Gophra'종교적인 구조물인 문(門))가 막아선다. 중앙의 탑이 입구이지만 작은 탑에도 입구는 있다.
하지만 양 끝에 있는 입구는 탑도 돌계단도 없다. 계급적 차이가 입구를 달리하는 것이다. 중앙의 것이 왕이나 귀족을 위한 것이었다면 작은 탑의 입구는 평민이었을 것이고 계단이 없는 양쪽 끝은 노예나 제사를 위한 짐승들의 수레가 드나드는 곳이었을 것임에 분명하다. 신성은커녕 귀족도 아닌 여행자가 들어가야 할 문이 어디인지 망설이는 동안 고프라 위로 인간의 세상을 알리는 햇살이 가득하다. 최고와 최대를 위해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쓰러졌을까? 그들이 짊어졌어야 할 30년의 무게는 얼마나 무거웠을까? 진정 이 무덤은 왕의 무덤이 아니라 크메르인들이 뿌린 땀과 신앙의 무덤은 아니었을까?
그렇다. 중앙의 입구는 더 이상 신과 왕과 귀족의 것이 아니다. 세월이 중앙의 문을 허락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들이 걸었던 양 끝의 문을 기억하지 않는다면 그 세월은 덧없는 것이리라.
중앙 입구의 문을 들어서자 사원을 정면에 두고 다시 긴 통로다리다. 넓이 9m, 길이 350m다. 신에게로 가는 길은 멀다. 다리 양 쪽 편에 쓰러져 가는 도서관 건물이 대칭으로 서 있다. 도서관은 책을 보관한 건물이 아니라 부조를 새겨 백성들이 그것을 보고 경전을 익혔을 것이라는 추측이 낳은 이름이다. 도서관 앞에는 연못이 하나씩 자리하고 있다. 많은 여행객들이 햇살에 몸을 드러내는 앙코르 와트의 신비에 젖는다. 짙은 어둠을 지키던 신이 밝은 햇살의 세상을 인간에게 내어주는 순간이다. 젊은 승려가 사원의 돌계단에 앉아 있다. 어쩌면 그에게는 이 사원이 누구에게 바쳐진 것인가는 중요하지 않을지 모른다. 바이욘 사원의 사면상이 누구의 얼굴인가가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비슈누든 부처든 어차피 깨달음은 그의 것이 아니든가?.
사원의 다섯 개의 탑 위로 눈부신 아침 햇살이 빛난다. 오후에 보기로 한 사원 내부를 아쉬움으로 하고 다시 두 개의 다리를 걸어 나오니 운전기사는 아침잠에 한참이다.
커피 한잔에 바게트 빵 하나로 아침을 때우고 반띠아이 쓰레이(Banteay Srei)로 향한다.
시엠립에서 27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반띠아이 쓰레이는 내전이 끝나고도 한참이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출입이 통제되던 곳이다. 앙코르 유적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여인의 성(城)이라 불리는 반띠아이 쓰레이는 967년에 완성되었다. 앙코르 톰이나 앙코르 와트가 거대한 아름다움이라면 이 사원은 정교한 미니어처로 불릴 만큼 규모는 작지만 다른 유적들에 많은 영향을 미친 유적이다. 특히 다른 사원과 달리 붉은 사암에 새긴 조각은 가히 그 아름다움이 놀라움에 가깝다. 사원의 앞은 공사 중이다.
거대한 나무를 잘라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나무 하나를 잘라내는 데도 이렇게 조심스럽고 더딘 것은 행여 나무가 사원에 미칠 영향 때문이다. 이렇듯 앙코르의 유적들은 이념과 싸우다가 이제는 열대 밀림이라는 자연과 싸우고 있다. 동쪽으로 난 입구를 따라 들어가자 머리가 셋인 코끼리를 타고 있는 인드라(Indra:고대 인도의 천둥번개를 관장하는 신, 전쟁의 신)가 날아든다. 빈 공간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조각들이 그 작은 키만큼 가깝다. 고즈넉한 사원을 품은 연못에 연꽃이 피어있다. 1923년 앙드레 말로(Andre Malranux,1901~76)가 훔쳐 달아난 압사라 상 앞에 선다. 그가 쓴 '인간의 조건'과 인간 앙드레 말로는 일치하지 않는다.
'인간에 대한 예의'는 단지 그의 글 속에 있을 뿐이다. 못난 인간의 욕망을 꾸짖기라도 하는 것일까? 압사라는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지만 젊은 날의 열정을 지키지 못한 여행자의 부끄러움을 숨기기에는 사원 뒤편의 담이 너무 낮다.
사원을 돌아 나오는 길에 장애인 악단을 만난다. 전쟁의 상처를 여전히 간직한 반띠아이 쓰레이에는 지식인의 변절을 슬퍼하듯 풀피리가 종일 울고 있다. 이른 점심을 먹고 다시 앙코르 와트로 향한다. 아침에 보지 못했던 사원 내부를 보기 위함이다. 아침에 보았던 해자 다리 밑에는 아이들이 수영을 하고 있다.
사진을 찍자 물을 튀기며 놀던 아이들이 다리 위로 서둘러 오른다. "기브 머니 포토." 볼펜 두 자루를 모델료로 지불하고 사원을 향해 걷는다.
사원 외곽을 이루는 회랑은 10여종의 그림책이다. 시계 반대 방향으로 새겨져 있는 그림들은 때로는 신화로 때로는 역사로 나타난다. 힌두교의 신화를 자세히 알지 못하는 까닭에 빨라진 발걸음이 인간의 역사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멈춘다. 물에 떨어진 병사를 삼키는 악어, 나무 위에 매달려 있는 원숭이, 헤엄치는 물고기까지, 분명 정지된 장면이건만 움직이는 듯 생생하다. 남쪽 회랑 중 60m는 천국과 지옥을 이채롭게 표현하고 있다.
3단으로 새겨진 부조 중, 위는 천국, 중간은 현세, 아래는 지옥을 표현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늘 하늘은 천국이었는지 모르겠다. 남쪽 회랑을 받치는 기둥 위에 난 총탄 자국은 내전의 상처이고 조잡하게 수리된 천장은 벼락을 맞은 흔적이다. 천국과 지옥의 회랑에 총탄과 벼락의 상처는 마치 인간에 대한 신의 분노 같아 보인다. 동쪽 회랑 가운데로 난 안쪽 뜰로 향하는 입구로 들어선다. 3층으로 향하는 좁고 가파른 계단이 두 개의 거대한 탑 사이로 이방인을 맞는다.
신에게로 가는 길, 누구나 겸허하게 낮추어야만 한다는 것을 계단은 말해준다. 기어오르지 않는다면 오를 수 없는, 해서 신에게 인간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존재인지를 각인시켜주는 계단 위에 메루산(힌두교 시바 신의 거처, 불교의 수미산)을 상징하는 중앙 탑이 버티고 서 있다. 서쪽 창문을 통해 앙코르 와트를 내려다본다. 어느 한 쪽으로도 치우침이 없는 좌우대칭을 이룬 건축물이다. 수 없이 마음을 곧추 세워가며 돌을 다듬었을 사원, 과연 편향되지 않는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물며 그것이 신에게 바쳐지는 것이었다면….
전태흥 자유기고가
사진: 앙코르 와트 중앙탑(메루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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