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풀뿌리 기부'의 아름다움

구세군의 종소리는 세밑임을 실감케 한다. 그러나 올해 세밑은 유난히 그 그늘이 넓고 짙어 보인다. 끝이 보이지 않는 경기침체로 실직자가 늘어나고, 취업 길이 열리지 않는 젊은이들이 넘쳐나는 등 서민들의 어려운 삶은 갈수록 태산이다.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못 살겠다'는 아우성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은 민생보다 정쟁에 매달리는 것 같아 더욱 절망하게 한다. 게다가 올해는 자선냄비가 거리에 등장해도 여느 해보다 온정과 사랑의 손길이 줄어든 감이 없지 않아 안타깝기도 하다.

○...올해도 '사랑의 체감 온도탑'이 마련됐다고 한다. 모금 목표액이 9백81억 원이며, 내년 1월말까지 그 온도를 100도 이상으로 끌어올릴 계획인 모양이다. 아마 대기업들이 거액을 내놓아 박수도 받게 되리라. 하지만 이 온도탑은 '풀뿌리 기부', 다시 말해 서민들의 얇은 지갑에서 꺼낸 작은 돈, 고사리손의 돼지저금통들이 전하는 온기까지는 보여주지는 못하리라.

○...낮은 곳에서 이뤄지는 기부는 더없이 아름답다. 작지만 세상을 따스하게 만들고, 구석진 곳을 비추는 등불과 같다는 생각도 든다. 개인의 소박한 기부는 물질만능의 세상에서 스스로를 구하는 '마음의 창 열기'이며, '나'와 '우리'를 동시에 행복하게 만드는 지름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풀뿌리 기부'는 진정한 '사랑의 체감 온도탑'이 아닐는지….

○...대구 30대 영세민 부부의 네 살배기 아들이 장롱 안에서 영양실조로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은 세밑 우리의 가슴을 너무나 아프게 한다. 아무튼 국가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경우였다면 영세민 구호제도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우리 사회가 극도의 이기주의에 빠진 나머지 가난한 이웃에 대한 외면과 무관심의 골이 깊어진 탓에 이런 참극을 부른 게 아닌지, 우리 모두가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이웃을 돕는 마음은 넘치고 남아야 생기는 게 아니다. 모닥불이 따스하게 느껴지는 건 작은 불들이 모여 불꽃을 피워 올리기 때문이다. 여유가 없으면서도 어렵게 모은 큰돈을 익명으로 던지는 사람들은 그런 모닥불의 불꽃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며, 우리를 감동시키게 마련이다. 이번 사건은 춥고 배고픈 이웃에게 따뜻한 마음과 손길을 줘야 하는 건 사회 구성원 모두의 책임이요 의무임을 일깨운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이태수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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