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제칼럼-고향(故鄕) 사랑 운동

흙이 풀리는 내음새/ 강바람은/ 산짐승의 우는 소릴 불러/ 다 녹지 않은 얼음장 울멍울멍 떠내려간다/ 진종일/ 나룻가에 서성거리다/ 행인의 손을 쥐면 따뜻하리라/ 고향 가까운 주막에 들러/ 누구와 함께 지난 날의 꿈을 이야기하랴…./ 간간이 잔나비 우는 산기슭에는/ 아직도 무덤 속에 조상이 잠자고/ 설레는 바람이 가랑잎을 휩쓸어 간다…. 귀향(歸鄕)을 갈구하는 간절한 심정을 담은 '고향 앞에서'란 오장환 님의 시구다. 이름조차 알 수 없는 길가는 고향 사람의 손만 잡아도 따뜻함을 느낄 것 같은 고향. 객지 생활이 힘겹고 지칠 때마다 생각만 해도 미덥고 그리운 고향에 대한 기억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필자도 20대에 미국 유학 생활 10년을 마치고 '말은 제주도로,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는 그 서울에서 머리가 하얗게 세도록 살다가 고향분들의 은혜로 국회의원 4년 하면서 자주 고향을 찾게 되었다. 옛 친구들과 소피국에 막걸리도 마셔보고 지금은 빌딩이 들어선 옛 집터도 찾아보고…. 그렇게 새삼스럽게 고향의 훈훈한 정을 느끼게 되었다. 지금도 서울집과 대구집을 분주히 오가며 연구 활동도 하고 대구시 경제고문으로 고향에 미력하나마 보답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노년에 찾은 즐거움이요 보람이다. 예전에는 벼슬길 끝난 사람이 하릴없어 고향으로 되돌아 온 것을 떨어질 락, 낙향(落鄕)이라 했는데 나는 즐거움을 찾아 고향으로 왔으니 즐거울 락, 낙향(樂鄕)이라 해야 맞는 말일 것이다.

고향은 인류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꺼지지 않는, 늘 마음을 인도하는 등댓불 같은 존재다. 주위를 둘러보면 고향 만두집, 고향 솥단지 삼겹살집 같은 식당도 보이고 역전에는 지명을 딴 의성 찻집, 구미 식당 같은 간판들이 고향 사람들의 발길을 이끈다. 요즘에는 꿈에 본 내고향, 초가집, 서객모(서울 객지 생활인들의 모임) 같은 인터넷 카페가 인기리에 접속된다고 하니 고향은 그 단어 자체만으로도 가장 흡입력이 높은 최고의 브랜드인 것이다.

지난달 16일에는 필자와 조해녕 대구시장, 그리고 몇 분이 한자리에 모였었다. 몸은 타향에 있어도 항상 어려운 고향 경제를 걱정하고 도와줄 마음은 있어도 마땅한 계기가 잘 없는 출향 대기업 CEO들을 하나로 묶는(인적 network) 모임 만들기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다행히 지역 출신의 성공한 CEO가 80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CEO(chief executive officer)는 미국 기업에서 처음 생긴 개념으로 과거의 사주(社主)와는 전혀 다른 능력이 검증된 최고경영자, 전문 경영인을 의미하는 현대 사회의 최고의 직업 중의 하나다.

그분들의 높은 전문지식과 경륜, 그리고 안목으로 고향 발전을 위한 조언도 해 주고 지역의 산'학'연, 그리고 공무원, 언론 등과의 교류와 협력을 늘리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다. 밥도 같이 먹고 차도 마시고 하는 가운데 정도 들고 정보도 주고받으면서 대기업의 자본과 공장 유치, 하도급과 납품 등의 길도 열릴 수 있을 것이다.

지역 금융권의 대기업 여'수신 확대, 인재의 취업에도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문화가 혈연, 지연, 학연으로 묶인 정(情)의 문화이고 청탁이라는 과거의 나쁜 풍토도 있었지만 공정한 경쟁에서 대등하다면 팔은 안으로 굽지 않겠는가.

지방의 여러 가지 불리한 여건을 감안할 때 청탁이 아닌 추천 문화는 도리어 지방화시대 활성화에 보탬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달에는 대구시장 주최로 서울에서 첫 모임을 갖기로 했다. 단순한 일회성 행사를 위해 고향으로 내려오시라면 그분들도 별 흥미나 보람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지역의 대표적 연구기관인 대구경북연구원과 산학경영기술연구원이 주축이 돼 그 분들을 자주 초청해 특강도 듣고 지역 인사들과 토론도 하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하고 기업 혁신에 대한 방향, 경영 노하우도 배우는 기회를 통해 지역 재도약의 밑거름을 만들어가고자 하는 것이 모임의 취지다. 이 모임이 결실을 맺어가면 과학자, 문화계 인사 등으로 '고향 사랑 운동'을 확대해 나가기로 의견을 모았다. '기업이 살아야 대구가 삽니다' 올해 대구시청에 커다랗게 내걸린 슬로건이다. 이제 우리 지역의 살길을 애향심(愛鄕心)에서부터 찾아보자.

김 만 제 낙동경제포럼/산학경영기술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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