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중학교 교사의 발표로 표면화된 학교 폭력조직 '일진회'의 실상은 충격적이다.
'이래서 학교에 보내겠느냐'는 걱정에서부터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자조 섞인 우스갯소리마저 나돌고 있다.
학교폭력을 조장하는 환경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영화도 완전결백을 외칠 자신은 없을 것이다.
특히 최근 영화 속에서 학교폭력이 '잘생긴 주인공'과 '멋진 액션'으로 과대포장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루빨리 학교를 폭력에서 구해내기를 기대하며, 영화에 등장하는 시대별 일진들의 모습을 살펴본다.
◇1960년대-'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박종원 감독)
▶일진 모습 : 주인공 엄석대(홍경인)는 완벽한 독재자의 모습이다.
학교에서 그의 말은 곧 법이다.
주먹과 반장 직함을 통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며, 반 급우들의 위에 군림한다.
각 과목 성적 우수학생들을 모아 자신의 시험을 대신 치르게 하고, 모든 잔심부름을 시키는 등 공포스런 독재자의 전형. 하지만 그 독재자의 말미는 초라하다.
힘을 잃게 된 엄석대에게 반 급우들은 그의 독재에 반감을 가지고 저항할 줄도 아는 능동적 모습을 보인다.
▶왕따 대상 : 엄석대에게 있어 왕따 대상은 따로 없다.
다만 자신의 왕국에 도전하는 동급생에게 가차없을 뿐이다.
하지만, 조직을 만들어 떼지어 괴롭히지는 않는다.
주먹은 왕국 유지를 위한 수단일 뿐, 친구들 때리는 일이 취미 생활 같은 즐거움의 의미는 아니다.
◇1970년대-'말죽거리 잔혹사'(유하 감독)
▶일진 모습 : 우식(이정진)은 학교에서 싸움을 가장 잘하는 카리스마 넘치는 짱이다.
하지만 우식은 절대 힘이 없는 약자를 괴롭히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을 감쌀 줄 아는 의리파로 묘사된다.
'일진'보다는 현수(권상우)가 비중있게 그려지고, 현수의 옥상결투에 대해서도 괴롭힘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식의 동기부여를 하려고 노력한다.
▶왕따 대상 : 이 시기가 배경인 영화에는 교내 집단 따돌림이란 의미의 '왕따'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주먹은 학교 밖에서 쓰이는 도구였으며, 서부영화의 결투장면이 연상되듯 학교 짱을 가리는 일대일 싸움이 유행했다.
그나마 인간적인 일진들이 학교에 다녔던 시기.
◇1980년대-'친구'(곽경택 감독), '신라의 달밤'(김상진 감독)
▶일진 모습 : 점차 일진의 모습이 조직폭력배를 연상하게 한다.
영화 '친구'의 주인공 준석(유오성)과 동수(장동건)는 무자비한 폭력으로 학교를 장악한다.
그들은 떼로 몰려다니며 자신들의 세를 견고히 다진다.
성인 조폭들의 세력 다툼에도 한몫을 담당하는 등 그들의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조폭들과 닮았다.
▶왕따 대상 : 영화에서 준석과 동수의 폭력 대상은 자신의 스승도 예외는 아니다.
퇴학을 당하던 날, 동수는 학교로 찾아와 교무실 집기를 부수며, "밖에서 내 만나면 뒤통수 조심하소"라고 외친다.
'신라의 달밤'에서는 싸움을 못하는 학교 모범생이 왕따로 등장한다.
소심한 우등생 영준(이성재)이 고교생 시절 왕따를 당한 복수를 위해 훗날 조폭 두목이 된다는 설정은 재미있다.
실제로 최근에 괴롭힘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진이 되었다는 학생의 증언이 나와 세상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현재-'늑대의 유혹'(김태균 감독), '맹부삼천지교'(김지영 감독)
▶일진 모습 : 요즘 영화에 등장하는 일진은 과거의 일진처럼 싸움만 잘 해서는 될 수 없는 업그레이드된 자리이다.
영화 '늑대의 유혹'에 등장하는 해원(조한선)과 태성(강동원)은 싸움을 잘해 각 학교 짱이지만, 그들에게는 싸움 외에도 잘생긴 외모와 부잣집 아들이라는 조건도 함께 붙어 있다.
'맹부삼천지교'의 현정(소이현)은 여기에다 모의고사 전국 수석이다.
한마디로 멋지고 쿨하며 돈도 많은 '명품형 일진'인 셈. 이처럼 멋있게 묘사된 스크린 속 일진 모습이 요즘 청소년들에게 죄책감마저 느끼지 못하게 한 원인이 아닐까.
▶왕따 대상 : 따돌림당하는 학생들의 모습은 천편일률적이다.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서, 학교 성적이 평범해서, 너무 못생겨서 등…. '단지 눈에 거슬려서'라는 등 특별한 이유가 없는 경우도 많아 충격적이다.
게다가 괴롭힘 정도도 무자비하고 광범위하다.
모습과 배경은 명품으로 치장했지만, 행동은 과거 일진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그리워하게 만든다.
정욱진기자 pencho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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