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의 대학이 고시촌으로 바뀌어 버린 감이 없지 않으나 이젠 이 현상을 이상하게 여길 일만도 아닌 것 같다. 우리 사회에 '사오정'이나 '오륙도'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로 '평생 직장' 개념이 무너져 버린 지는 오래됐다. 하지만 공무원 임명장 하나만 손에 넣으면 정년 때까지 허리띠를 푼 채 느긋하게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도중에 물러나도 연봉이 훨씬 많은 공기업 자리를 돌아가며 즐기는 특권마저 누릴 수도 있다. 그래서 '철밥통' '복지부동'이라는 말이 좀체 사라지지 않는다.
◇올 들어 공직사회에도 혁신 바람이 불고 있기는 하다. 행자부는 본부·팀제 전면 도입 계획을 발표, 서열 파괴'성과 위주의 조직 혁신에 앞장서겠다고 나섰다. 그 바람이 공직사회에 퍼져나갈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러나 지나친 파격 인사는 조직 내부의 혼란과 조직원 간의 위화감을 키울 수도 있어 '실패 실험' 소지가 있다는 우려의 소리도 나오고 있다.
◇경북도가 오는 5월 8일에 치를 예정인 지방공무원 임용시험에 2만8천266명이 원서를 내 사상 최대 규모의 응시자 수를 기록했다고 한다. 행정직 등 12개 직렬에 828명을 뽑을 계획이어서 경쟁률이 무려 34대 1이다. 접수된 원서만도 사과 박스 10개 분량이라니 시험과 관련된 업무와 준비 작업으로 고심하는 등 즐거운 비명을 지르게 된 건 당연한 일이다.
◇ 대구시가 지난 3월 9급 공무원 임용시험 때도 277명 모집에 역시 사상 최대인 1만3천876명이나 몰렸다. 경북도보다도 치열한 51.9대 1의 경쟁률을 보였던 셈이다. 이 때문에 고사장은 수능 시험장을 방불케 했으며, 감독 공무원이 1천60여명에 이르기도 했었다. 특히 14개 중·고교 교실 414곳을 빌리는데 진땀을 뺐다니 지금 우리 사회에서 안정된 직장을 향한 목마름이 어느 정도 인가를 짐작케 한다.
◇평생 직장을 얻어 안정된 생활을 하려는데 나무랄 수만은 없다. 하지만 젊은이들이 모두 '사'자 돌림의 직업을 지향하고, 그에 미치지 못할 경우 아쉬운 대로 그보다 작은 '철밥통'이라도 얻으려는 풍조는 우려된다. 극심한 경제 불황으로 대다수의 국민은 고통에서 자유롭지 못한 형편이다. 나라의 장래를 멀리 내다보는 새로운 일자리 창출 정책, 자신의 안일만 추구하는 분위기의 지양이 아쉽다.
이태수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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