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추억 속으로)의성 쌍계천 징검다리

보리밭 건너오는 봄바람이 더 환하냐/ 징검다리 건너오는 시냇물이 더 환하냐/ 아니다 엄마 목소리 목소리가 더 환하다.

혼자 핀 살구나무 꽃그늘이 더 환하냐/ 눈감고도 찾아드는 골목길이 더 환하냐/ 아니다 엄마 목소리 그 목소리 더 환하다- 정완영 시조시인의 '엄마 목소리'

징검다리에 대한 추억은 고향이 시골인 중장년층이면 누구나 한두가지씩은 가슴 한 쪽에 품고 산다. 매서운 강바람에 오들오들 떨면서 땔감용 나무를 지고 건너던 그 길, 부모님께 갖다드리려다 미끄러지는 바람에 새참을 강물에 다 쏟아버리고 흘린 눈물, 돌 밑을 뒤지다 요행으로 물고기를 잡았을 때 그 기쁨이란….

머리 속에 떠올리기만 해도 우리에게 노스탤지어(nostalgia)를 불러일으키는 징검다리가 의성군 봉양면 쌍계천에 길게 놓여 있다. 지난 2003년 의성군이 사업비 9억7천만 원을 들여 친자연형 하천으로 가꾸기 위해 만든 것. 탑산온천 앞에서 도리원교까지 2.5km 구간 쌍계천에는 2개의 징검다리외에도 2개의 수중분수대, 폭 10m 높이 30m의 인공폭포도 있다.

관광객들은 마치 오랜만에 옛 친구를 만난 듯 즐거운 표정들이다. "정월 대보름날이면 휘영청 밝은 달을 보러 징검다리를 건너 산에 오르던 기억이 생생하다"는 김영춘(61)씨는 "한 칸 한 칸 가위보를 하면서 누가 먼저 다리를 건너나 내기를 했던 친구들이 그립다"며 추억을 떠올렸다.

의성군청 권광호 환경관리과장은 "쌍계천의 수질을 개선하고 주민들의 휴식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만든 징검다리가 지역의 새로운 명물이 됐다"며 "고향은 제각각 달라도 향수는 누구나 마찬가지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징검다리가 놓이면서 아침 저녁 등산·산책객뿐 아니라 주민들도 요긴하게 이용하고 있다. 주민 신영훈(46)씨는 "어린 시절 가을이면 여름 장마에 떠내려간 징검다리를 복원하기 위해 집집마다 한명씩 동원돼 징검다리를 놓았다"며 "쌍계천 건너편 밭일도 새 징검다리 덕분에 훨씬 편해졌다"고 즐거워했다.

신씨는 "당시 징검다리를 복원한 뒤에는 고깃국을 끓이는 등 마을잔치가 벌어졌다"며 "다리를 놓던 동네 어른들은 지금 모두 고인이 돼버렸지만 왠지 옛날이 그립다"고 했다.

학창시절 탑산에 오르기 위해 하루도 빼놓지않고 징검다리를 건넜다는 경북씨름협회 김태성(65·탑산온천 대표) 회장은 "추운 겨울 한번이라도 강물을 건너 본 사람이면 징검다리의 고마움을 알 것"이라며 "징검다리를 볼 때마다 시계를 30년 전으로 돌려논 듯한 생각이 든다"고 회상했다.

지금은 시골 구석구석을 돌아봐도 웬만한 개울과 하천에는 크고 작은 콘크리트 다리들이 놓여 있어 징검다리를 본다는 게 쉽지 않다. 잠시만이라도 가족들의 손을 잡고 도시를 벗어나 개나리와 산수유, 목련, 이름 모를 들꽃들이 만개한 산과 들로 나가보자. 그 옛날 추억과 애환, 정취를 함께 느낄 수 있는 징검다리를 건너며 우리 아이들에게도 평생 간직할 추억들을 가슴에 깊이 심어주자. 더 늦기 전에.

의성·이희대기자 hdlee@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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