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볕이 유난히도 따갑던 지난 25일 오후, 조용하던 시골 중학교에 잠시 소란이 일었다.
교과서를 덮은 아이들은 하나, 둘씩 강당으로 모여들기 시작했고 커튼 너머 작은 무대 위는 분주하게 움직인다.
바람에 날리는 꽃잎만 봐도 "까르르" 웃음보를 터뜨릴 나이, 아이들의 들뜬 목소리가 강당을 가득 메운다.
전교생을 다 합쳐봐야 54명에 불과한 이 작은 시골학교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야트막한 담을 타고 부드러운 기타 선율이 마을로 퍼지기 시작했다.
간간이 들리는 아이들의 환호와 웃음소리. 때 이른 초여름 햇살이 무색하도록 아이들의 얼굴이 환하게 빛난다.
25일 경북 의성군 금성면 탑리여중에서 열렸던 '신나는 예술여행 찾아가는 시 콘서트'의 현장이다.
이번 '찾아가는 시 콘서트'는 3회에 걸쳐 진행됐다.
15, 22일에는 낭송과 즉흥시 만들기, 시노래 작곡법, 시 노래 함께 부르기 등의 시간이 마련됐다.
25일 열린 '해설과 함께하는 시노래 콘서트'에는 짧은 곡 설명과 함께 노래가 이어졌다.
울산에서 찾아온 시노래패 '울림'의 노래도 아이들의 귀를 사로잡았다.
아이들의 표정도 다양하다.
무대를 뚫어져라 응시하는 아이, 시 귀절에 맞춰 고개를 흔드는 아이, 한 손으로 턱을 괴고 음악에 빠져있는 아이 등. 공연은 8명의 아이들과 공연단이 '귤빛부전나비'를 합창하며 막을 내렸다.
혈관은 넓지만 소통은 막혀있는 문화의 '동맥경화' 현상이 심각한 요즘, 문화에서 소외된 농촌을 찾아가는 작은 음악회는 모세혈관을 타고 온몸을 도는 맑은 피와 같다.
문화 소외지역에 체험과 감성이라는 영양분을 공급하고 문화 환경과 관련된 농촌 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여준다.
"매년 한 번씩 의성문화회관에서 열리는 순회 뮤지컬을 관람하는 정도가 문화 욕구를 해소할 수 있는 거의 전부에요. 평소에는 반 아이들과 버스를 대절해 단체로 영화를 관람하는 정도죠. 콘서트를 본다는 건 엄두도 못내요." 이택준 탑리여중 국어담당 교사는 안타까워했다.
"좀 더 투자가 많았으면 좋겠어요. 경제적인 손해를 생각하기보다는 정신적인 이득이 더 많다는 사실을 이해해줬으면 합니다.
"
동방신기라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꺅" 비명부터 질러대는 아이들에게 문화적 욕구란 오죽할까. 비록 아이들의 놀거리가 '화단에 뿌린 씨앗이 싹 트는 걸 보는 재미'일 정도로 자연과 가깝지만 '내 손안의 TV시대'라는 DMB시대가 열리는 판에 TV와 인터넷에 만족해야 한다는 사실은 이들에게 아쉽기만 하다.
콘서트를 처음 봤다는 이현주(15)양은 "저희나 공연하시는 분들이나 모두 처음엔 어색하더라구요. 그냥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하고요…. 하지만 곧 적응했어요. 실제로 본 공연이 TV에서 보던 가수들의 시끄러운 음악 프로그램과 다르다는 점도 좋았구요."
시노래 콘서트를 마련한 진우씨는 "아직 홍보가 부족해 콘서트를 요청하는 학교가 별로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류시화 시인이 그러더군요. 세상을 시와 노래로 흠뻑 적셔달라구요. 아이들이 당장은 실감하지 못하겠지만 처음 접해 본 공연 문화에 대한 기억이 아주 오래도록 남을 겁니다.
"
'신나는 예술여행 찾아가는 시 콘서트'는 오는 7월까지 청도군·문경시·고령군 등을 찾을 예정이다.
행사비용 일체는 시 노래풍경과 복권위원회, 한국문화예술진흥원에서 전액 부담한다.
인생 역전을 노리며 구입한 복권의 수익금이 문화 소외지역의 자양분이 되는 셈. 경남·북의 군 이하 면에 소재하는 중·고등학교로 전교생이 100명 이하면 우선 선정된다.
문의 시 노래풍경 053)424-5559. 장성현기자 jackso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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