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서가에서- '이야기' 산업

'라그나로크'라는 온라인 게임이 국내외에서 인기를 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런데 대부분의 게임이 이미 알려진 '이야기'로부터 만들어진 것임은 게이머들조차 잘 모르고 있는듯 하다.

라그나로크만 하더라도 북유럽 신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대부분의 신화가 그러하듯, 북유럽 신화 역시 천지창조를 거쳐 여러 종족의 영역이 만들어지고 오딘, 발카리, 로키와 같은 신들과 필리르 등의 동물까지 등장하여 대서사시를 그려낸다. 여기에 북유럽 특유의 음산하고 기이한 자연적 조건까지 더하다보니 더욱 더 상상력을 자극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 신들이 영생불멸의 존재인데 비해 북유럽 신들은 용감히 싸우다가 죽는다. 신들을 더 인간에 가까운 '영웅'으로 그렸다. 북유럽 신화의 등장인물들을 온라인 게임의 캐릭터로 쉽게 바뀔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생각을 돌려보자. IT산업이나 영상산업이 가치를 창출해 내기 위해서는 '이야기'가 뒤를 받쳐주어야 한다. 성공한 온라인 게임이 신화를 배경으로 한 것과 마찬가지로, 영화사에 남는 명작들의 대부분은 성경이나 세익스피어를 원작자로 두고 있다.

근래 영화판이 어수선한 것도 자본과 스타 시스템에 대해 이야기 즉 시나리오와 연출을 맡은 작가의 창작의지가 부딪힌 것이다. 자본과 원료가 없는 이 나라에서 IT 컨텐츠와 영상산업은 분명 육성해 볼만한 분야이다.

정부는 물론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이 분야에 상당한 연구비와 인력을 투입해 왔고,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정작 가장 중요한 분야 즉 이야기거리를 찾아내어 가공하거나 새 이야기거리를 만들어내는 노력에는 어느 정도의 지원과 투자가 있는지 의문이 든다. 잘라 말해, 창의적 '인문학'이 없이는 IT 컨텐츠와 영상산업도 없다는 것이다.

박일우 계명대 프랑스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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