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조 속에 가만히 누워 죽어있는 한 남자. 죽기 전 무엇을 쓰고 있었는지 바닥에 늘어진 오른쪽 손엔 펜이 들려 있다. 왼손은 죽음의 순간에 쓰고 있었는지 피묻은 문서를 쥐고 있다.
프랑스 고전주의 미술의 대표자 다비드는 프랑스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1793년 7월 13일 죽은 장 폴 마라의 마지막 모습을 위와 같이 묘사했다.('마라의 죽음')
스위스 뇌샤텔 출생인 마라는 본래 의학을 공부했다. 1765년부터 10년 동안 런던에서 유학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정치의 길을 선택했다. 1774년 '노예제도의 사슬'을 저술해 절대주의적 정치구조를 비판했다. 프랑스혁명은 그를 다시 혁명의 장으로 뛰어들게 했다. 1789년 9월, 혁명 2개월 뒤 '인민의 벗'지(紙)를 창간해 혁명을 인민의 입장에서 감시하며 민중의 정치참여를 고취했다.
철저한 인민주의자 마라는 소농민·소시민 층의 절대생활권 보장과 모든 특권층과 기생계급을 없앨 것을 염원했다. 비록 산악당의 독재를 증오하는 반혁명파 여성에게 자택 욕실에서 척살당하면서 이루지 못한 꿈이 됐지만 말이다.
▲1922년 호구조사규정 공포 ▲1930년 제1회 우루과이 월드컵 대회 개막 ▲1989년 경제정의실천시민엽합 발족.
조문호기자 news119@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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