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어찌하여 눈이 오나 서리가 내리나 변함이 없는가? 깊은 땅속까지 뿌리 곧음을 그로하여 알겠노라.'(오우가)
윤선도가 벗으로 삼은 소나무를 닮고 싶었다. 변함없는 푸름을 배우고 싶었다. 굽고 뒤틀린 모양새 속에서도 풍겨져 나오는 곧은 지조를 알고 싶었다. 그런 벗이 보고 싶어 찾은 울진의 소광리 금강소나무 숲이었다. 하지만 소광리 금강소나무는 딴판이었다. 금강송은 단 한 나무도 굽어지지도, 뒤틀리지도 않았다. 볼품없이 왜소하지도 않았다. 쭉쭉 뻗은 시원한 모습일 뿐. 아름드리 소나무가 하늘을 떠받치듯 솟아 있었다. 이때까지의 소나무에 대한 알량한 지식은 다 헛것이었다. 소나무도 저렇게 당당할 수 있었다.
'사람의 나이도 이순(耳順)은 돼야 소나무가 제대로 시야에 들어오리'(박희진의 '소나무에 관하여')라 했는데…. 눈앞의 장쾌한 소나무가 한눈에 들어오는 것은 어찌된 일일까. 아마 솔바람과 솔향이 온몸을 휘감았기 때문이리라.
너나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지만 지금 눈앞의 현실은 꽉 막히고 답답할 뿐이다. 그럴수록 곧고 푸르고 쭉쭉 뻗은 금강소나무가 그립다. 이젠 솔바람과 솔향이 온몸을 휘감는 숲에서 마음을 가다듬을 때다. 200~300년, 많게는 500년간 푸름을 지켜온 숲이 아니던가. 그동안 단 한 번도 화려한 꽃을 피워본 적이 없었을 터. 그래도 솔바람에 실려오는 솔향만은 여전했다. 후텁지근한 날씨 속의 상큼함. 그런 금강소나무를 닮고 싶었다.
소광리 금강소나무숲의 숨겨진 매력 중 하나는 가는 길에 있다. 13.5㎞의 계곡길이 인상적이다. 굽이쳐 흐르는 계곡을 따라 낸 비포장길(간간이 시멘트 포장)이 소박하다. 15개나 되는 잠수교를 건너 계곡을 가로지르는 재미도 만만찮다. 너무 맑아 손을 담그기조차 민망한 계곡물과 너럭바위도 일품. 아무 곳에서나 차를 세우면 그곳이 선경이다. 아래쪽의 불영계곡은 바위를 타고 흐르는 물길을 도로에서 내려다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소광리 계곡은 쉽게 다가설 수 있을 만큼 다정하다.
소광리 계곡의 출발점은 불영계곡. 36번 국도를 따라 봉화 방면으로 가다 보면 불영사를 지난다. 통고산 자연휴양림 조금 못미쳐 광천교를 지나면 오른쪽으로 소광 방면 917번 지방도 표지판을 만난다. 이 길을 따라 소광리 소나무숲까지 계곡이 굽이굽이 이어져 있다.
여기서부턴 길옆, 계곡 옆의 소나무를 눈여겨 봐야 한다. 다른 산에서 보던 소나무와 확연하게 다르다. 쭉쭉 뻗은 기상이 예사롭지 않다.
광천교에서 승용차로 10여 분 달리면 삼거리. 왼쪽은 달우자수정광업소 가는 길이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아 쉬엄쉬엄 15분 정도 더 가면 다시 삼거리다. 역시 오른쪽이 금강소나무 숲으로 가는 길이다. 여기서부터가 '천연보호림 금강소나무 보호구역'. 이쯤이면 계곡의 잠수교를 건너는 재미에 흠뻑 빠져있을 때다. 역시 전신주처럼 우뚝 선 소나무들이 반긴다.
특이한 볼거리는 황장봉계금표(黃腸封界禁表). 왕족의 관을 짤 양질의 소나무를 베어내지 못하도록 그 경계지역을 바위에 새겼다. 소광리 마을을 지나 1.5㎞ 정도 더 가면 푯말이 보인다.
한참을 가다 보면 차단기가 삿갓재를 오르는 임도를 가로막고 있다. 소나무재선충을 예방하기 위해 외지 차량은 무조건 통제한다. 하긴 재선충이 이곳을 갉아먹는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다. 지난 2000년 동해안의 산불이 삼척을 거쳐 내려올 때 산림공무원들이 불길을 막기 위해 사력을 다했던 곳 아니던가.
차단기가 내려져 있지 않더라도 여기서부터는 걷는 편이 낫다. 채 발걸음이 익숙해지기도 전에 수령 530년의 거송을 만난다. 이 숲에서 가장 오래된 금강소나무다. 여전히 곧고 당당하다. 주위에 숲을 이룬 높이 20~30m의 금강소나무들을 거느리고 있다. 이곳서 송림욕을 즐긴다는 생각은 사치다. 그저 장대한 소나무에 감탄할 뿐이다. 이 금강소나무는 양팔을 벌려도 안지 못할 만큼 크다. 그래도 두 팔을 벌려 안고서 쳐다봐야 제대로 볼 수 있다. 하늘을 향해 굽힘없이 쭉 뻗어 올라간 붉은 소나무 모습이 속시원하다. 안면도의 홍송 숲, 소수서원의 노송 숲에서 느끼지 못하던 힘이 있다. 그래서일까. 숲길을 아무리 걸어도 피곤하지 않다.
금강소나무 숲을 더 잘 보기 위해선 트레킹 삼아 임도를 따라 2㎞ 정도 더 올라가봐야 한다. 중간중간 오솔길이 마련되어 있어 가만가만 숲을 감상하기에 그만이다. 위쪽에 관찰림이 하나 더 조성되어 있다. 잡목을 제거하고 간벌을 해 금강소나무를 제대로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다. 시간 여유가 있으면 임도를 따라 삿갓재를 올라도 된다.
▶찾아가는 길
울진에서 불영계곡(36번 국도)을 따라 봉화방면으로 달린다. 불영사를 지나고 울진군 서면 삼근리를 지나면 광천교가 있는 삼거리(울진에서 승용차로 30분). 오른쪽 917번 지방도가 소광리 금강소나무숲 가는 길이다. 이곳서 13㎞. 차단기가 내려져 있는 삿갓재 입구까지 승용차로 35분 정도 걸린다. 비포장 길이라 승용차는 밑바닥이 긁힐 각오를 해야 한다. 군데군데 시멘트로 포장된 곳은 지난 태풍 매미의 흔적이다.
▶뭐하며 놀지?
금강송은 22일부터 8월15일까지 열리는 '2005울진세계친환경농업엑스포'에서도 볼 수 있다. 울진군이 바닷가에 있는 이 숲을 행사장으로 활용해 '금강송 산책로'로 꾸몄다. 군에서 보호림으로 지정해 관리해오고 있는 숲이다. 산책로 입구에서는 금강송 어린 묘목을 나눠준다.
친환경농업 관련 축제라고 해서 그냥 지나치면 후회할 일. 의외로 전시·공연과 체험 등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많다. 야생화관찰원과 시골농장, 생태터널을 꾸며 볼거리를 주고 해외 각국의 이색민속공연도 마련되어 있다. 전통문화체험관과 건강흙체험관에서는 각종 체험행사도 열린다.
특히 이 기간 동안 울진농협 백암수련원은 행사 관람객들에게 객실과 편의시설 등을 무료로 지원한다. 무료이용시설은 객실 62실과 대중탕· 공동조리실 등으로 엑스포 입장권을 구매, 소지한 사람들이 대상이며 18일부터 전화(054-787-1131)로 예약을 받는다.
울진군의 백일홍가로수 길도 차를 타고 지나볼 만하다. 울진군에서는 덕구온천 가는 길과 백암온천 가는 길에 약 1만여 본의 백일홍을 가로수로 심었다. 7월 말 절정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평해-백암온천의 12㎞는 2002년 '아름다운 가로수길'로 선정되기도 했다.
불영계곡 입구 쪽의 민물고기전시관(054-783-9413)도 꼭 들러봐야 할 곳. 살아있는 토속 민물고기 50종과 민물고기 표본 200점, 사진으로 보는 우리 민물고기 55점이 전시되어 있다. 연어의 생활사와 물고기생태계 및 관련상식 등 교육자료도 준비되어 있다.
글·박운석기자 stoneax@imaeil.com
사진·박노익기자 noi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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