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론-목메어 읊조릴 금강산의 새노래

무더운 속에 한반도 남북관계는 숨가쁜 움직임을 보였다. 북핵 6자회담의 재개, 경협 12개항 합의, 200만㎾ 전력 지원, 개성 박연폭포와 백두산 천지연 관광, 남북이산가족 화면상봉을 위한 광케이블 설치 등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모두 기뻐할 일들인데 내게는 왠지 좀 혼란스럽고 다소 성급해 보이고 마냥 반갑지만은 않은 느낌이다. 한달 후면 백두산을 우리 쪽에서 오를 수 있게 될 것 같아서 통쾌하다. 중국으로 돌아서 천지연에 올라 눈물만 흘리던 때를 생각했다. 정말 이렇게 통일이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덮어놓고 흥분만 되지는 않는다.

쌀 50만 톤의 장기차관 원조를 우리 정부가 작정한 것은 잘 된 일이다. 북한동포들의 영양실조가 세상에서 7번째로 심각하다. 굶주린 아프리카의 후진국도 아닌 우리의 피붙이가 배고파 하는데 아니 돕고 어떻게 민족의 역사 앞에 떳떳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이번만은 북한당국이 조그만 정성을 보여주면 좋겠다는 아쉬움을 누를 수가 없다. 50만 톤의 쌀은 625만 가마니의 엄청난 분량이다. 이에 대해 북한정부가 고마움을 표시할 좋은 수가 있다. 90세를 넘긴 노약한 실향 이산가족이 남한에 2천400여 명 있다. 밤잠을 못 이루며 오늘 밤을 살아서 내일도 귀향의 꿈을 꿀 수 있을지도 모르면서 연명해 가고 있다. 이들에게 고향방문의 기회가 주어질 수는 없는지?

200만㎾의 전력을 남쪽에서 보내면 어둡고 춥고 헐벗은 우리 북녘땅의 모든 도시와 농촌과 광산촌들을 밝히고 따뜻하게 하고 생산력을 높여줄 것이다. 참으로 중요한 통일의 길잡이가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북한으로부터 무엇이든 조금은 받는 계획이 있는지 물어보고 싶다. 무슨 장사흥정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돕는 일에는 조건이 없는 것이 좋다. 그러나 북녘땅 우리의 겨레는 서로 돕기를 원하고 있는 것을 나도 안다. 2만1천여 명의 80세를 넘긴 실향민들을 지역별로 작은 그룹을 만들어서 함경도와 평안도, 황해도와 강원도 북녘으로 다녀 오게 할 수는 없을까?

큰 돈이 드는 일도 아니다. 할 수 있다고 믿는다. 며칠 전 현대그룹과 현대아산의 대표들이 김정일 위원장과 원산에서 만나 개성과 내금강과 백두산 관광사업을 현대가 맡게 되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8'15에는 박연폭포, 8월 말에는 백두산 천지연에 관광객이 가게 될 듯하다. 그런데 남북당국과 현대그룹을 포함한 경제계 지도자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7년 전 '그리운 금강산'이 처음으로 우리에게 열렸을 때의 감동은 이제 별로 없다. 100만 명이나 다녀왔다. 보고 돌아온 사람이면 누구나 느끼는 것이 있다.

북녘동포를 자유롭게 만나서 60년, 맺힌 한을 풀며 통일의 새 아침을 꿈꾸는 노래가 나왔어야 했다. 그런데 그렇지 못했다. 관광객들과 북한 농민 노동자들 사이에는 흉물스런 철조망이 가로막고 있어 분단의 아픔은 오히려 더 깊어졌다. 남북한 사람들 사이의 위화감은 못보고 그리워할 때보다 더 심각해졌다. 개성과 백두산 관광길이 개방되면 뭘 하는가? 화해와 협력, 통일의 꿈노래를 2천만 북녘동포와 함께 부를 기회는 없을 것 같다. 그들과 같이 목놓아 울고 울면서 이산가족들이 만나야 한다. 상봉으로 잠깐 꿈같이 만나고 다시 생이별을 하는 것은 너무 잔인한 일이다. 만나면 오래오래 같이 살아야 한다. 망향의 눈물이 귀향의 웃음으로 승화되어야 한다.

1천만 명이 넘는 이산가족들 가운데서 상봉 신청자는 겨우 12만여 명밖에 안 된다. 이들만이라도 관북과 서북의 옛 고향으로 삼삼오오 짝을 지어 귀향하게 되어야 한다. 시간이 없다. 70세를 넘긴 노인들 6만7천여 명만이라도 이 가을과 겨울, 명년 춘삼월에 제 집을 찾아가는 꿈을 이루게 되어야 한다.

적십자 정신과 민족혼의 명령을 우리는 너무 오래 외면하고 분단과 대치의 이념전쟁 속에서 살아왔다. 정치가 아무리 막강하다 해도 반세기가 넘도록 엽서 한장 못 나누며 생사를 모르고 사는 가족들이 이렇게 많은 것을 계속 막고 말리고 억압할 수는 없다. 세상 사람들 앞에 이보다 더 부끄러운 일이 없다.

이윤구 백범사상실천운동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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