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이야 누구나 문화의 소중함을 알고, 문화산업으로 대박을 터뜨리는 일 또한 낯설지 않다. 하지만 내가 처음 민선 지사가 되던 10년 전만 하더라도 문화는 '있으면 좋고 없어도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는' 그런 것이었다. 모두들 21세기는 문화의 세기라고 했지만 이를 위해 구체적으로 준비하는 모습은 찾아 보기 어려웠다.
그런 가운데 경주에서 세계문화엑스포를 연다고 하니 일개 자치단체가 선례도 없는 대규모 국제행사를 치를 수 있느냐는 우려가 쏟아졌다. 그러나 삶이 윤택해질수록 문화의 힘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기에 문화엑스포만큼은 꼭 성공시키고 싶었다. 1896년 아테네에서 근대 올림픽이 시작된 후 근 한 세기만에 문화를 주제로 한 새로운 올림픽의 돛을 우리 경북이 올린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찼다.
1996년 3월 기본계획을 세우고 그해 12월 재단법인을 설립하여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그런데 1997년 11월 20일 기공식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예기치 않은 복병을 만났다. 12월 2일 IMF 사태가 터진 것이다. 나라 경제가 난파선처럼 침몰한 마당에 행사를 연기하는 것이 맞지 않느냐는 목소리가 높아만 갔다. 목이 타들어가는 고민 끝에 나는 '절박한 상황 속에 해답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외여행이 힘들어졌기 때문에 국내에서 문화적 볼거리를 제공해 줘야 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무너진 국민들의 기(氣)를 되살릴 수 있는 계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예정대로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행사를 준비하면서 크고 작은 어려움이 많았지만, 모두들 헌신적으로 일해 주었기에 극복할 수 있었다. 특히 그 해는 비가 유달리 많이 왔는데, 폭우 속에서도 철골조 위에 올라가 작업하던 어느 직원의 모습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러한 고생스러움은 1998년 9월 엑스포를 개막하던 날 모두 잊혀졌다. 물밀듯이 사람들이 밀려와 문화의 향연을 만끽하는 모습을 보며, IMF라는 국가적 위기 속에서 꽃 핀 엑스포가 얼마나 값진 것인가를 확인할 수 있었다.
2000년 두 번째 행사 때는 프랑스의 문명비평가 기 소르망이 엑스포를 찾았다. 그는 내게 "그동안 한국인은 우수한 문화를 가지고 있음에도 이를 잘 모르기 때문에 자랑하고 팔아먹을 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엑스포에 와 보니 한국 문화산업의 미래가 밝은 것 같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후 그의 말은 현실로 나타났는데, 2003년 세 번째 엑스포의 주제영상인 '화랑영웅 기파랑전'이 수출되어 전세계 250개 극장에서 상영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내년에는 캄보디아에서 앙코르와트-경주문화엑스포가 열릴 예정이다. 비온 뒤에 땅이 굳듯 경주세계문화엑스포는 이제 한국의 자랑스런 문화 아이콘이 되고 있다.
이의근 경북도지사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세 번째 대권 도전마저…홍준표 정계 은퇴 선언, 향후 행보는?
野, '피고인 대통령 당선 시 재판 중지' 법 개정 추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