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어느 19세 왕자의 이야기입니다. 사랑하는 여자친구와 결혼을 하고 싶었던 왕자는 21세가 되기 전에는 맘대로 결혼할 수 없다는 왕실의 규정 때문에 나이가 찰 때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형인 왕세자는 19세도 되기 전에 벌써 왕위를 이어받아 왕관을 쓰고 있었습니다.
왕자는 불만이 생겼습니다. 왜 형은 19세가 안 돼도 왕까지 될 수 있는데 자기는 결혼 좀 하겠다는데 21세가 돼야 허락되느냐는 불만이었습니다. 그래서 왕실의 어른에게 항의했습니다. 그러자 스승 같은 그 어른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건 말이다. 한 나라를 통치하는(정치) 데는 19세가 안 돼도 가능하지만 한 가정을 이뤄서 자식과 아내를 책임지고 이끄는 가장(家長) 역할을 하는 데는 적어도 21세는 넘어야 제대로 해낼 수 있으니까 그랬을 거다."
오는 26일은 난생 처음 투표권을 행사하게 돼 19세 청소년 유권자 여러분에게는 의미있는 날입니다. 비록 성년의 나이는 되지 않았지만 전세계 167개국 중 86%의 나라가 18세부터 선거권을 주고 있는 추세로 본다면 '19세 선거권' 획득은 때늦은 감조차 있습니다.
잘된 일입니다.
여러분의 선거 참여를 반기면서 영국 왕자의 일화를 소개해 본 것은 결혼이든 정치 참여든 각각의 나이에 따라 자신의 의사 결정과 판단에 대한 적절한 무게의 책임과 의무가 나름대로 맞춰 따른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입니다.
이제 여러분에게는 투표권이 주어진 이상 '나이를 낮춰주길 잘했다'는 신뢰와 기대를 사회와 어른세대 앞에 보여줘야 할 사회적 책임이 생겨났습니다.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을 뽑는 일은 여러분이 자주 바꾼다는 휴대전화를 고르는 것과는 다릅니다.
휴대전화는 한두 번 써보고 신통찮으면 금방 다시 새 모델로 바꿀 수 있지만 선거는 그렇질 못합니다.
휴대전화는 CF 모델이나 탤런트가 예쁘다는 이유로 그 제품을 가벼이 골라도 그만이지만 선거는 후보가 몸짱이라서 뽑았다는 식으로 선택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처럼 법을 고쳐가며 나이를 낮춰준 뜻 속에는 여러분이 '뮤직 뱅크' 인기 투표하듯 후보를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란 믿음이 담겨있어서입니다.
권리를 넘겨준 이상 의사 결정 결과에 따른 정치적 책임감도 가져야 된다는 주문이기도 합니다. 권리 행사에 따른 책임을 다하기 위해 여러분이 보여줘야 할 변화는 어떤 것이어야 할까요. 고교에서만 30년을 가르친 어느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선 정치적 결정을 하려면 판단의 사료(思料)가 될 정치적 현상과 세상의 흐름을 살펴야 된다고 말입니다.
요즘 19세 청소년세대들 정말 신문 제대로 안 보고 TV 뉴스 해설 안 듣는다는 게 그분의 경험적 토로였습니다.
개그맨들이 넘어지고 자빠지는 TV 쇼 프로나 연예가의 스캔들 프로도 보고싶겠지만 뉴스해설·심야 토론 채널과도 가까워지는 성숙함을 기다린다는 말입니다.
호프집이나 또래 동아리 친구 아니면 운동권 선배들만 만나는 토론의 장(場)과 대화의 상대 또한 집안과 부모'선생님 쪽으로도 돌려야 합니다.
그것이 투표 나이를 낮춰준 어른세대의 기대이고 신뢰이며 희망입니다. 여러분보다 바로 몇 살 위였던 청년세대 유권자들이 2년6개월 전 선거 때 좀 더 성숙된 판단과 생각으로 투표했었더라면 지금 같은 청년 실업률, 경제적 고통, 계층 갈등이 만연된 정권은 태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 중 일부는 취직 못한 백수 오빠, 공장 문 닫은 삼촌을 쳐다보고서야 투표 잘못했구나고 뒤늦게 고개를 가로젓습니다.
19세 청소년 유권자 여러분.
선거는 쇼나 '오빠 부대' 같은 이벤트 바람몰이에 휩쓸리는 인기 가수 인터넷 투표가 아닙니다. 다시 한번 여러분의 선거 참여를 환영합니다.
김정길 명예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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