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가 금추로 변했어요. 올해 같으면 농사 지을 만 하지요."
중국산 납 김치 파동으로 가을 채소값이 급등하면서 농민들은 오랜만에 웃음을 되찾은 반면 서민 가계에는 주름살이 늘고 있다.
12일 봉화군 춘양면 우구치 마을. 첩첩산중 고랭지 무·배추밭에는 푸른 배추 한 포기 남아있지 않은 채 낙엽만 뒹굴고 있었다. 배추값이 폭등하자 재배농민들이 서둘러 판매에 나섰기 때문.
일찌감치 가을걷이를 마친 농민들의 입가에는 웃음이 그치지 않았다. 16년째 고랭지 채소를 재배하고 있다는 김호규(41) 씨는 "배추농사 지어 10차(4.5t 기준)에 3천100만 원 받기는 처음"이라며 "수년 동안 장사꾼 구경도 못했는데 올해는 갑자기 몰려와 밭떼기로 사 갔다"고 말했다.
김씨는 "지난해 가을과 올 봄 3만 평의 배추를 갈아엎고 난 뒤 농사 지을 엄두가 안나 7천 평밖에 짓지 않아 조금 아쉽기도 하다"며 "올해 가격은 거의 횡재 수준"이라고 웃음 지었다.
옆에 있던 김정규(50) 씨도 "지난해는 1차당 20만~50만 원에 거래돼 대부분 농민들이 수확을 포기하고 밭을 갈아엎거나 도시에 사는 친척들에게 다 보내줬다"며 "올해 가격이 좋아 그동안 손해를 조금이나마 만회하게 됐다"고 했다.
고랭지 채소 집산지인 봉화지역은 연간 봄배추·무 129㏊, 가을배추·무 297㏊를 재배, 64억 원의 소득을 올렸으나 올해는 농가소득이 100억 원대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봉화군 농업기술센터 이교완 소장은 "지난해 중국산 김치 수입으로 배추값이 떨어져 손해를 본 농민들이 올해는 배추 농사를 많이 포기해 물량 자체가 줄어든데다 중국산 납 김치 파동으로 수요가 급증해 가격이 두 배 가까이 오른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채소 상인들은 품귀현상마저 빚고 있는 가을배추 확보에 전쟁을 치르고 있다. 상인들은 출하량이 크게 줄자 농촌에 나가 직접 거둬 들이고 있는 형편.
영주에서 채소가게를 운영하는 박우익(48) 씨는 "이미 강원도와 경북에서 생산되는 가을 배추와 무는 바닥이 난 상태"라며 "본격적인 김장철이 닥치면 배추 수요가 대거 몰려 전라도 등지에서도 물량확보가 어려울 것 같다"고 전망했다.웃지 못할 일도 생기고 있다. 가격이 낮아 수확을 포기했던 채소 등 국산 농산물들이 갑자기 '귀하신 몸'이 되고 있는 것.
1천500평에 양상추를 재배한 박지훈(35·봉화읍 화천리) 씨는 "10여 일 전만 해도 10㎏ 한 상자에 3천 원하던 양상추가 최근 경락가격이 2만 원대로 크게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온 가족이 새벽부터 수확작업을 하고 있다"고 자랑했다.
땅콩·참깨도 올해 가격이 좋다. 안동지역 중간상인들에 따르면 국내산 피땅콩은 도매가격이 ㎏당 3천 원 선으로 지난해 2천200원에 비해 30%가량 올랐다. 중국산은 ㎏당 2천 원으로 국내산보다 값이 싸지만 좀처럼 거래가 되지 않고 있다.
ㅇ땅콩 상점 김용덕(45) 씨는 "가게에 오는 소비자 거의 100%가 국내산을 찾는다"며 "상반기까지 싼값에 많이 찾던 국내 대형 유통업체들도 중국산 땅콩 판매를 꺼리고 일부 식당·주점 업주만 중국산을 찾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갑자기 뛰어오른 농산물 가격은 가계에 부담이 되고 있다. 주부 최영애(40·영주시 휴천동) 씨는 "중국산 납 김치 파동 이후 직접 김치를 담가 먹으려는 이웃이 늘고 있다"며 "소매점에서 한 포기 1천 원 정도 하던 배추값이 최근 2천500원 내외로 올라 걱정"이라고 말했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배추는 포기당 소비자 가격이 최고 3천 원에 육박하고 있으며, 평소 거래되지 않던 중·하품도 포기당 1천~1천500원을 호가해도 물량 확보가 하늘의 별 따기다. 특히 배추는 농산물도매시장이나 농협 공판장 등 농산물유통센터를 통해 안정적으로 출하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 않아 물량 확보가 더욱 어려운 형편이다.
한용덕 경북도 유통특작과장은 "예년의 경우 10월에는 무·배추 가격이 낮았으나 올해는 수요 증가로 가격이 높다"며 "다음달 김장철에도 무는 평년가격을 유지하겠지만 배추는 다소 높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안동·권동순기자 pinoky@msnet.co.kr 영주·봉화 마경대기자 kdma@msnet.co.kr
사진: 가격 폭등으로 뒤늦게 양상추 수확에 나선 농민들이 기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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