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최초의 예술영재교육원이 대구에 문을 열었다. 두뇌 영재를 키우는 곳은 넘쳐 나지만 예술 분야에 재능 있는 학생들을 뒷받침해 줄 곳은 전무하다는 사실을 고려한 것이다. 지난 달 5일부터 시범운영에 들어간 대구예술영재교육원은 오는 25일 정식 개원식을 갖는다. 앞으로 대구 문화를 이끌어가고, 나아가 한국의 문화·예술계를 짊어질 예술 새싹들을 키워낼 예술영재교육원을 둘러봤다.
△예술적 '끼'를 키웁니다
지난 토요일 오후, 북구 도남동의 대구예술영재교육원에서는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 바순, 트롬본 등의 악기가 다양한 음색을 쏟아내고 있었다. 학교 수업을 마친 뒤 셔틀버스를 타고 달려와 다시 연습에 몰입한 학생들이라 지칠 법도 했는데, 악기 소리만큼은 가을 하늘을 가르고 남을 정도로 우렁찼다.
미술과 학생들은 가을의 정취를 화폭에 담는데 여념이 없었다. 대구의 북쪽 구석에 위치해 통학하기 어려운 단점은 있지만 수십 년은 족히 돼 보이는 고목이 운동장 한 가운데 버티고 있고, 주위에는 벼가 노랗게 익어가는 논과 정겨운 시골집들이 눈에 들어와 예술적 감성을 키우는데 더없이 좋은 환경이었다.
현재 예술영재교육원에서 수업 중인 학생은 모두 93명. 교수와 학생이 일 대 일로 수업하는 독주·독창 10명을 비롯해 합주 30명, 합창 23명 등 모두 63명의 음악과 학생들과 회화 15명, 창작공예 5명, 디자인 10명 등 30명의 미술과 학생들이 선발됐다. 교수진은 대구·경북에서 최고의 기량을 자랑하는 교수와 대구시립 교향악단 단원 등으로 꾸려졌다.
△'예술 교육=Money'의 공식을 깬다
정진솔(안심중1년.피아노) 양은 이제 접어뒀던 꿈을 다시 펼칠 수 있게 됐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지난해 여름 줄리어드 예비학교를 포기하고 귀국한 지 1년 2개월 만이었다. 진솔 양의 어머니 정혜영(43) 씨는 "미국에 보낸 지 2년 만에 도저히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공부를 계속하겠다며 떼쓰는 아이를 불러들였다"며 "레슨조차 받지 못하고 혼자 연습하는 딸을 보면서 너무 마음이 아팠는데 예술영재교육원에 다닐 수 있게 돼 천만다행"이라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예술영재교육원은 끼 있는 아이들이 꿈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장(場)이다. 특히 집안 형편 때문에 마음 놓고 레슨도 받지 못하던 예술 영재들에게는 최고의 교수진에게 수업을 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채우기 대구시교육청 장학사는 "학생들의 예술적 역량은 사실 부모의 경제력과 맞먹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교육비 부담이 크다"며 "잠재력은 있는데 경제적으로 어려워 포기하는 학생들을 지원하는 것이 예술영재교육원의 가장 큰 목적"이라고 했다.
일반 학생들을 위한 예술 심화·체험학습 프로그램도 운영된다.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학교별로 신청 받아 도자기 만들기, 비즈공예, 염색공예 등의 미술 실습과 국악 체험교실을 열고 있는 것. 이헌우 미술부장은 "전일제로 운영되는 심화·체험교실에 학생들의 반응이 아주 좋다"며 "올 연말까지 2천여 명의 학생들이 체험학습에 참여할 예정이며 매년 4천여 명의 학생들이 체험학습 기회를 가지게 될 것"이라고 했다.
△까다로운 선발과 중간평가
예술영재교육원의 모든 프로그램은 무료로 실시되기 때문에 입학은 물론 중간평가도 꽤나 엄격하다. 입학을 위해서는 엄청난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 지난 8월에 실시된 입학 전형의 경우 독주·독창 부문 10명 선발에 150명이 지원해 15대 1의 경쟁률을 보이는 등 평균 5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음악과 전형은 1차 전공 연주와 면접, 2차 청음·시창·전공별 초견 연주 등의 실기기초와 음악적 창의성 테스트로 이뤄지며, 미술과 전형 역시 미술적 창의성을 평가하는 실기시험과 면접을 거쳐야 한다.
경쟁자들을 물리친다고 해서 모두 영재교육원에 입학 가능한 것은 아니다. 합주·합창 지휘를 맡은 이재준 교수(쿠바 하바나 국립 예술대학)는 "오케스트라를 구성하려면 60여 명의 학생이 필요하지만 1·2차 오디션을 거쳐 30명의 학생만을 선발했을 뿐"이라며 "정원을 채우지 못하더라도 일정 수준의 기량을 갖추지 못해 영재성이 검증되지 않은 학생들은 아예 선발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워두고 있다"고 했다.
선발된 후에도 가야할 길은 험난하다. 한 번 입학한 학생은 고3이 될 때까지 영재교육원에서 레슨을 책임지지만 결석이 2회 이상일 경우나 6개월마다 실시되는 중간평가에서 90점 이상의 평점을 얻지 못할 경우 곧바로 '퇴출' 당한다.
올해는 개원을 위해 여름방학 때 입학 전형을 실시했지만 앞으로는 매년 초 학생을 선발할 계획이다. 따라서 다음 입학생 전형은 내년 2월에 있을 계획. 초·중학생만을 대상으로 선발한다. 채 장학사는 "문화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에는 창의성과 개성이 넘치는 학생을 조기에 발굴해 체계적인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전국 예술영재 교육의 모범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글·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사진·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5·18묘지 참배 가로막힌 한덕수 "저도 호남 사람…서로 사랑해야" 호소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