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산 '기생충알 김치'가 가히 쓰나미급 파장을 몰고 오고 있다. 한끼도 김치 없으면 밥 못먹는다는 김치중독자들마저 식당 김치엔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 아무리 "국산 배추로 직접 담급니다." 하소연해도 마이동풍이다. 집에서 담근 김치 외엔 안 믿겠다는 소비자들의 불안심리에 따라 배추값은 두세 배씩 뛰고 있다. 자칫하다간 애꿎은 국내 김치공장들마저 줄도산 위기에 처할 판이다. 이런 판에 약국 한구석에서 잊히고 있던 구충제가 때아닌 성수기를 맞고 있다.
이번 소동으로 문득 떠오르는 풍경 하나, 까마득한 기억 저 너머 '채변봉투' 를 떠올린 사람들도 많으리라. 보릿고개 눈물고개이던 지난 시절엔 횟배 앓는 사람들도 많았다. 배만 볼록 튀어나온 아이들이 뱃속 벌레들로 인해 얼굴빛이 감꽃마냥 노랗게 떠서 비실대는 모습이 흔했다. 1960년대 중반, 국민의 90% 이상이 기생충에 감염돼 있다는 조사결과가 나오자 기생충 박멸은 국가적인 과제가 됐다. 각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연 2회 채변검사를 하게 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채변봉투에 변을 담아오는 일은 아이들에겐 고역이었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고, 아무리 애써도 못 구했거나 깜빡 까먹은 아이들 중엔 급한 김에 된장이나 개똥을 담아갔다가 선생님에게 혼나기도 했다. 더러는 친구의 것을 분양받아 냈다가 엉뚱한 약까지 울며 겨자먹기로 먹어야 했던 일도 있었다. 구충제 먹는 날은 아침밥을 거르고 등교해야 했다. 개똥을 담아갔던 어떤 이는 선생님으로부터 "회충, 요충, 촌충, 십이지장충…." 한참을 읊던 끝에 약을 한움큼 받았을 때 무척이나 부끄럽더라고 털어놓는다.
교실에 가득 찼던 '농민의 향수' 내음, 코를 싸매던 아이들의 모습, "철수 회충 10마리, 요충 5마리, 영희 회충 8마리, 촌충 3마리'''" 일일이 호명하며 약을 나눠주시던 선생님, 아이들의 홀쪽한 배에선 연신 '꼬르륵' 소리가 합주를 하고'''.
학교에서의 채변검사는 1991년부터 완전히 중단됐다. 요즘에사 횟배 앓는 아이들은 눈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오히려 과잉 영양을 걱정할 판이다. 보릿고개 시절 채변봉투의 기억은 채플린의 웃음 뒤 눈물 한 방울처럼 우스꽝스럽고도 애달프다.
논설위원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野, '피고인 대통령 당선 시 재판 중지' 법 개정 추진
'어대명' 굳힐까, 발목 잡힐까…5월 1일 이재명 '운명의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