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은 생명이며 주권입니다." 이는 지난 10월 16일 대구에서 농민단체와 시민, 소비자단체들이 진행한 우리쌀 지키기 시민한마당 때 나왔던 구호이다. 또한 10월 30일 서울 여의도에서 우리쌀 지키기 전국 소비자 대회에서 내걸고 있는 구호이기도 하다. 이 구호는 국내 쌀 소비 홍보용 구호가 아니라 2004년 UN에서 쌀의 해를 맞이하여 정한 내용이기도 하다.
이처럼 쌀은 생명이며 주권일 정도로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이 구호 내용의 무게감만큼 느끼는 시민들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현재 쌀 수입개방을 놓고도 농민들의 생계보장의 문제와 경제적 효율의 잣대로 평가되고 있는 현실이 무척이나 안타까운 일이다. 쌀을 지킨다는 것은 한편에서는 농촌의 몰락과 농민의 생계를 보장해주는 일이기도 하지만, 쌀과 농업의 문제는 농민의 문제를 넘어 시민들의 건강권과 생명권, 그리고 국가 식량안보를 지키는 것이기도 하다.
쌀은 가까운 미래에 엄청난 무기가 되어 우리사회를 위협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 선진농업으로 유명한 쿠바는 10여 년 전 식량자급률이 43%정도밖에 되지 않는 사회였다. 소련 등 동구권의 갑작스런 몰락과 더욱 강화된 미국의 경제봉쇄정책으로 인해 쿠바사회는 철저하게 고립되어 수만 명이 아사 직전에 빠지고, 국가안보가 위협될 정도로 힘든 상황이었다. 이후 엄청난 고통을 감내하고, 농업의 중요성을 깨달으며 현재는 100% 넘는 식량자급률과 유기농 중심의 선진사회가 된 것이다.
또한 일본, 스위스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 대부분 선진국들은 일찍이 식량안보의 중요성을 경험하면서 식량자급률 100%를 유지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1980년 우리나라의 쌀 생산이 냉해로 인해 크게 감소하자 RGA와 코넬은 쌀 가격을 3배 이상 올려 판매하면서 우리 경제를 위협한 적이 있다. 현재 우리나라 식량자급률은 농림부의 통계에 따르면 26.8%이고, 그나마 쌀을 제외하면 5%도 안 되는 실정이다. 이는 우리네 식탁이 완전히 세계시장에 내어져 있다는 이야기이다. 하루 세 끼 식사 중 두 끼 이상을 외국에 의존하고 있는 이 상황에서 지구온난화와 기상이변으로 식량재해가 왔을 때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또한 거대 다국적 곡물기업들이 자기네 말을 듣지 않는다고 식량을 무기로 위협해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또 한 가지 문제는 쌀과 농업문제를 위협하는 중요한 요인은 시민들의 식생활문화의 변화다.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우리 국민 한 사람이 1년간 소비한 쌀의 양은 82kg이었다. 이를 1995년의 1인당 소비량(106.5kg)과 비교해 보면 지난 10년 사이에 우리 국민 한 사람이 먹은 쌀의 양이 25kg 가까이 줄어들었다. 이땅에서 생산되는 곡식 중에서 유일하게 자급하고 있는 쌀의 소비가 줄어든 대신 패스트푸드나 육류 그리고 가공식품의 소비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 이상이 3대 생활습관병(암, 심혈관 질환, 당뇨병)으로 목숨을 잃고 있다. 불과 1세기 전만 해도 희귀병이었던 이러한 질환들의 폭발적인 증가는 우리들의 바뀐 식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에 대한 방증이다. 이처럼 쌀 소비는 줄고, 육류나 가공식품 중심의 서구형 식사문화로 바뀌는 것은 우리의 건강과 생명을 내어놓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의 해법은 소비자의 사려 깊은 선택에 있다고 본다.
얼마나 건강하게 키우고 수확했는지, 원산지는 어디며, 유통경로는 어떠한지, 얼마나 먼 거리를 이동하며 에너지를 소비해 환경에 영향을 미쳤는지 등 건강과 환경의 관점에서 꼼꼼히 따지는 똑똑한 소비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사려 깊은 선택이 생산과 유통을 건강하고 생명력 넘치게 만들어 나갈 것이다. 쌀을 지킨다는 것은 쌀을 먹는 우리의 건강만 지키는 게 아니다. 쌀을 지킴으로써 논을 지킬 수 있고, 논은 공기를 맑게 하고, 수해를 막아주는 자연 댐의 역할 등으로 그 환경적 가치는 수치로 환산하기 힘들 정도다. 쌀을 지킨다는 것은 곧 온 생명을 품고, 키워내는 근원을 함께 지키는 실천인 것이다. 이는 바로 소비자들의 선택에 달린 것이다.
자 그럼 이제 밥 먹으러 갈까요?
정현수(대구녹색소비자연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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