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교조와 어린이 십자군

얼마 전 어느 초등학교 교내 게시판에 큰 포스터 하나가 나붙었다. 그림 내용은 이런 구도였다. 한반도 지도 그림이 그려지고 남쪽에서 국군이 총검을 북쪽으로 향해 찌르는 모습과 북쪽에는 어린아이를 업은 어머니가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떨며 움츠리는 장면-. 그리고 남한 국군의 총검 끝에는 붉은 피가 뚝뚝 흐른다….

제목은 '호국 보훈의 달'. 누가 봐도 6'25 전쟁을 표현하면서 '북침'을 암시하는 포스터로 이해되기 쉬운 내용이다. 그 포스터를 그린 어린이가 왜 피묻은 총검의 방향을 북쪽으로 그렸는지는 알 수 없다. 또 스스로의 표현이었는지 아니면 연가투쟁이나 APEC회의 비판 저질 동영상을 만든 부산 전교조 같은 소수 어른 선생님들의 반미'전투적 언행에서 영향을 받은 탓인지는 알 수 없다.

또한 많은 어린이들의 포스터 작품 중 누가 왜 하필 그 그림만 뽑아 골라 현관 게시판에 내걸었는지, 왜 그학교 교장은 외부 방문객이 지적할 때까지 소신 있게 뜯어내지 못하고 몸사리며 침묵했는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의문은 남는다.

게오르규의 말처럼 어린이는 폭력과 피와 고통, 그리고 추악함을 싫어한다. 그런데 그런 아이들이 왜 어른들 세계에서 다투는 폭력적 시비와 피의 역사를 본받는 듯한 표현을 했을까.

인류 역사상 아이들이 어른들의 비교육적이고 폭력적인 언행을 본떠 보다 저지른 최악의 비극으로는 13세기 초 빚어진 '어린이 십자군(十字軍)' 사건을 꼽는다. 1095년 우르반 교황이 최초의 십자군 운동을 주창했을 때의 그 정신과 취지는 약탈이나 살육 같은 폭력적이고 피로 얼룩진 전쟁이 아니었다.

그러나 170년 간 8회의 십자군 원정을 이어가는 동안 오늘날 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교회의 역사적 과오로 사과했을 만큼 비극적이고 반문명적인 죄업으로 변질됐던 것이다. 그러한 어른들의 변질된 십자군 원정의 독성은 드디어 1212년 프랑스에서 겨우 열두 살짜리 스테판이란 목동이 '어린이 십자군'을 일으키면서 어린이 세계로 전염됐다.

철없는 어린이들은 스테판의 선동아래 1만여 명이 집결, 프랑스 전역을 휩쓸며 중동으로 나가는 마르세유 항구를 향해 진군했다. 아이들은 어린이 십자군이 이슬람 국가로 나아갈 수 있도록 '바다가 갈라질 것이다'는 스테판의 거짓 선동에 빠져 갈증과 더위에 지치면서도 진군을 계속했다.

그러나 바다는 갈라지지 않았다. 실망한 어린이 십자군들은 일부는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윌리엄이란 노예 상인이 성지까지 공짜로 배를 태워 주겠다는 유혹에 빠진다. 일곱 척의 배에 나누어 탄 700여 명의 어린이 십자군 전사들은 이슬람 노예상에게 팔려가 일부는 이집트로, 일부는 기독교 노예들이 값비싸게 팔리는 바그다드까지 끌려갔다.

그러한 어린이 십자군의 비극은 이후 독일에서도 재연돼 니콜라스라는 어린이가 쾰른에서 수천 명의 어린이 십자군을 모집, 알프스를 넘어 북이태리까지 갔으나 끝내 참담한 몰골로 귀국했다. 그리고 니콜라스의 아버지를 목매달아 어린이 십자군 원정 실패를 보복하는 비극을 치른다. 두 차례의 어린이 십자군 비극은 어른들의 비뚤어진 본보기가 때로는 교육적으로 상상 밖의 상처와 독소를 끼친다는 진리를 깨우치는 역사적 교훈이 되고 있다.

북쪽으로 겨눈 피 묻은 총검을 그린 어린이는 누구의 본때와 가르침을 받았을까를 걱정해 본다. 십자군의 교훈처럼 어른의 변질로 교육계에 어린이 십자군이 생겨난다면 그것은 결코 참교육이라 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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