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상 밖' 사람들-영주시 수철리 대미골 김유준씨

중앙고속도로 풍기나들목에서 소백산을 향해 달리다 보면 풍기온천을 지나 가파른 아스팔트길을 만난다. 소백산을 넘는 아흔아홉굽이 죽령 옛길의 시작이다. 한때 영남 제일의 관문이었지만 이제는 쓸쓸하기만 하다. 오가는 차는 좀처럼 볼 수가 없고 가로수는 겨울의 시작을 알리듯 앙상한 가지만을 드러내고 있다.

죽령길을 10분쯤 오르다 보면 오른쪽으로 등산로를 만난다. 희방사 계곡 옆 골짜기인 대미골이다. 첩첩산중의 고요를 깨며 30여 분쯤 올랐을까. 숨이 가슴에 차오를 때쯤 말끔히 정돈된 집 한 채가 보였다. 대미골의 끝집, '대미산방'(大尾山房)이다.

소백산 해발 630m에 위치한 산방은 20여평 남짓한 통나무집과 축사·염소·강아지·야생화·텃밭·집입구 장승과 잘 어울려 절로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통나무로 만든 탁자, 처마 끝에 주렁주렁 매달린 시래기, 가지런히 쌓아 올린 장작, 나무 계단, 개 짖는 소리···. 어느것 하나 정겹지 않은 것이 없다.

주변 경관에 취해 있는데 뒷전에서 나즈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떻게 오셨어요." 긴 수염과 헝클어진 머리의 산방 주인 김유준(63) 씨가 낯선 사람의 방문에 조금은 놀란 모습으로 맞았다.

잠시 뒤 인기척 소리에 할머니 한 분이 부엌에서 나왔다. 산방 안주인인 줄 알았더니 김씨가 어머니라고 소개해 낯선 객을 놀라게 했다. 여든을 넘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순박한 산사람의 모습 그대로인 김씨와 어머니 엄부자(83) 할머니는 "속세와 인연을 끊은 지 꽤 오래 된 것 같다"며 말문을 열었다.

김씨가 속세와 인연을 끊고 새로운 삶을 선택한 것은 1981년. 그 전에는 동국대 ROTC 4기로 지난 1968년 예편한 뒤 부산과 대구에서 직장생활과 자영업을 하며 평범하게 살았다.

"무작정 떠났던 배낭여행이 문제였지요. 소백산 산행길에 만난 한 할머니가 대미골에 있는 과수원 1만5천평을 판다는 말을 듣고 바로 찾아와 구입한 것이 산생활의 시작이었습니다."

반대도 많았다. 처자식과 그냥 오손도손 살면 되지 사춘기 학생도 아닌 사람이 불혹의 나이에 직장까지 그만 둬가며 무슨 방랑길이냐고.

'세상 밖 세상살이'도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처음 계곡을 봤을 때 너무 좋아 눌러앉기는 했어도 집도 절도, 전기도 전화도 없는 곳을 삶터로 일구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던 것.

"지금은 콘크리트 포장이 됐지만 처음엔 길도 없었어요. 토끼길뿐이었죠. 아마 5년은 산 밑에서 생필품을 사 지개로 져 나르고 촛불로 밤을 세웠을 겁니다. 말 그대로 원시생활이었죠."

책 몇 권하고 배낭을 전 재산 삼아 사는 동안 속세의 인연은 하나 둘 멀어져 갔다. 산생활에 대한 두려움과 외로움도 끊임없이 밀려왔다. "사람이 찾아오면 그보다 반가운 게 없었습니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하라고 해도 못하겠지만 그 땐 고생 고생 말도 못하게 했죠. 당시 생활에 비한다면 요즘은 호강이죠. 허허." 김씨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세상 돌아가는 것은 알 일도 없고 모르고 사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합니다. 하기야 여기서는 심심할 틈도 없습니다. 풀도 매야 되고 장작도 해야 되고 염소, 닭, 개도 돌봐야하죠. 틈틈이 작품(서양화)도 해야 되고···." 엄살(?)을 부리는 김씨의 얼굴은 행복감에 젖어 있었다.

"나는 삶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어떤이는 제가 깊은 사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저 산과 나무가 좋아 산에서 사는 것 뿐입니다. 바깥생활은 복잡해서 싫습니다."

엄 할머니가 길손에게 따뜻한 커피 한 잔을 건넸다. "하나밖에 없는 자식인데 산속에서 혼자 사는 게 걱정이 돼 그냥 있을 수가 있어야지. 1991년부터 같이 사느라 오히려 아들 마음고생만 많이 시켰어."

엄씨는 몇년 전 아랫마을 사람들과 산나물을 뜯으러 소백산에 올라갔다가 그만 길을 잃고 산 속에서 하룻밤을 지내야 했다. 당연히 마을에서는 난리가 났다. 김씨는 물론 경찰과 마을사람까지 밤새 한 숨 못자고 온 산을 헤메고 다녔다.

"산 속에 잘 때 보니까 이빨에서 딱딱 소리가 나더라고. 얼마나 추운 지 죽는 줄 알았어. 그날 이후로는 아들 빨래 해주고 밥 해주고 조용히 살아. 심심하면 개, 닭, 염소하고 놀지. 여기선 다들 친구야." 팔순의 어머니 얼굴에선 끝없는 자식사랑과 산생활의 고독함이 엿보였다.

옆에서 듣고 있던 김씨가 한마디 거든다. "가끔 작품활동으로 인연을 맺은 장승보존회 회원들과 어쩌다 계곡을 찾았다가 들르는 길손들이 세상과의 인연입니다. 1년에 한두차례 보존회 회원들과 만나 막걸리 파티하는 날이 바깥구경하는 날이죠."

갑자기 염소 울음소리가 들렸다. 김씨가 급하게 집 뒤쪽 염소우리로 달려갔다. 궁금증을 참지못하고 김씨를 따라 나섰지만 엄 할머니는 가까이 가면 안된다고 극구 말렸다.

잠시 뒤 닫힌 염소 우리의 문이 열리고 환한 웃음을 머금은 김씨가 나타났다. "우리 집 살림이 불었어요. 염소가 새끼를 낳았네요." 산사람의 순수한 웃음에서 일상의 범주를 떨쳐버린 이유를 찾을 수 있을 듯 했다.

어느덧 산 그림자가 몰고 온 어둠에 산장은 다시 고요를 되찾았고 '세상 밖 사람'들의 배웅을 뒤로 한 채 객(客)은 땅거미가 내려앉은 산길을 따라 제자리로 돌아와야 했다. 영주·마경대기자 kdma@msnet.co.kr

사진 : 여든셋의 어머니와 예순셋의 아들이 양지바른 곳에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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