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왕의 남자'가 스크린쿼터의 암살자가 됐다"

영화 '왕의 남자'(제작 이글픽쳐스·씨네월드)가 5일 한국 영화 흥행 기록을 새로 쓰게 됐다. 이런 대기록 수립에 가장 기뻐해야 할 사람들은 감독과 배우, 스태프 등 땀 흘려 영화를 만든 제작진일 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의외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2월11일 전국 관객 1천만 명을 돌파했을 때도 기념 포스터를 관객에게 배포하는 것으로 조용한 자축연을 치렀던 '왕의 남자' 팀은 이번 기록 경신 때도 3일 감독과 주연배우들의 무대인사를 통해 관객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는 것 외 일체 다른 행사를 마련하지 않았다.

영화계의 현안인 스크린쿼터 축소 논란 때문이다.

이준익 감독은 2일 밤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왕의 남자'가 스크린쿼터의 암살자가 됐다"는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이 감독은 "'왕의 남자' 흥행 성공을 스크린쿼터와 연관짓지 않을 수 없다"고 전제하며 "암살자에게 총을 쥐어준 것이나 다름없다. 축구로 말하면 우리 영화계에 '왕의 남자'가 자살골을 먹인 것이다"라는 말로 무겁고 답답한 심경을 표현했다.

이 감독은 1천만 관객을 돌파한 2월11일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1인 시위 주자로 나서기도 했다.

그는 "만약 블록버스터로 흥행 성공이 예상됐던 '태풍'이 기대했던 성과를 거두지 못한 뒤 '왕의 남자'가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다면 올 겨울 한국 영화 화제작은 '투사부일체'를 제외하곤 그리 없었을 것"이라며 "그랬다면 한국 영화 점유율은 예년보다 떨어졌을 텐데, 우리 영화의 성공으로 스크린쿼터를 축소하려는 정부 측에 논리를 제공해준 셈이 됐다"고 말했다.

주연 배우인 정진영도 비슷한 발언을 했다.

정진영은 "영화가 개봉했을 때만 해도 스타 배우가 출연하지 않는다는 이유 등으로 스크린을 많이 확보하지 못했다. 그때만 해도 스크린쿼터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왜곡된)배급 논리로 인해 피해를 봤다고 생각했는데 '왕의 남자'의 성공으로 스크린쿼터 자체의 당위성이 위협받고 있다"며 "기뻐해야 할 시점에 한국 영화계가 위기를 맞아 참 답답하다"며 씁쓸한 심경을 토로했다.

영화계에서는 '왕의 남자'의 흥행 성공이 진정한 한국 영화의 힘을 보여준 영화라며 내 일처럼 기뻐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왕의 남자' 제작진은 영화계에 미안한 마음을 표현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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