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동북공정 고구려사

마다정 외 지음/서길수 옮김/사계절 펴냄

'고구려는 중국의 동북변경에 있었던 지방정권이었다.'

지난 2003년 고구려사를 중국 역사에 편입시키려는 동북공정(東北工程)이 국내에 소개됐을 당시 연일 중국의 패권주의를 질타하면서 금방이라도 정리된 우리의 입장을 제시할 듯한 기세였다.

그러나 중국이 막대한 연구비와 인력을 들여 동북공정을 합리화하는 '고대중국 고구려사 속론(古代中國高句麗史續論)' 등을 출간하는 사이 우리는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했다. 중국 측 공식 보고서가 나온 지 2년이 지나서야 번역물이 나올 정도로 우리의 실상은 허약했다. 그것도 고구려연구회 회장을 역임한 서길수 서경대 교수가 저들의 논리를 알아야 한다는 차원에서 개인적으로 매달려 베일에 가려 있던 그 구체적인 내용이 소개된 것이다.

'고대중국 고구려사 속론'을 번역한 '동북공정 고구려사'는 고구려사를 중국에 편입시키려는 중국의 욕심을 반영하듯 820여 쪽의 방대한 분량이다. 책은 동북공정의 핵심논리를 제시하는 '이론편', 한국의 고대사 전반이 모두 중국에서 발현하였음을 주장하는 '역사편', 한국의 고구려사 연구성과를 총망라하여 평가하는 '연구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그 결론은 오로지 고구려가 중국의 지방정권이라는 데 모아져 있다.

이 책의 이론편에서는 논란의 핵심이었던 '고구려는 우리나라(중국) 역사에서 변경지방 민족정권'이란 문구가 명시돼 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중국 대륙의 주변국들은 한족에게 속한다는 해묵은 화이(華夷)사상을 내세운다. "몇 백 년이라고 해도 좋고 몇 천 년이라고 해도 좋다. 이 범위(청나라 영토)에서 활동한 민족은 모두 중국 역사상의 정권"이라고 주장한다.

책의 몸통인 역사편에서는 앞서 풀어놓은 억지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해 아전인수적 사료와 자의적 해석을 제시한다. 고구려의 지리적 위치가 중국의 한사군 현도 땅에서 세워졌다는 점, 현재 북한 지역도 한의 낙랑 땅에 포함돼 있었다는 점을 주요 증거로 삼는다.

문화적으로도 고구려의 유·불·도 삼위일체 사상이 중국과 유사하고, 고구려인이 즐겼던 '긴 소매 춤'까지도 한나라 풍습이라고 주장한다. 고구려의 건국신화도 한나라 계통에서 유래했다는 황당한 해석을 내놓는다.

연구편은 한중일 3국의 고고학 연구를 비교하면서 동북공정을 재차 강조하고 있다. '고조선도 우리나라(중국) 고대역사에서 지방 민족정권'이라며 고조선까지 왜곡 작업을 확대한다. 급기야 오대(五代)에서 명(明)나라까지 중국정사에서 고구려를 중원과 따로 구별해 기술한 '송사' 등 자신들의 정사기록마저 부정하는 지경에 이른다.

번역자 서길수 교수는 "중국에서 이 책에 대한 비판이 있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며 "중국이 20년 넘게 은밀히 추진한 연구결과를 한국 역사학계의 연구역량을 바탕으로 반드시 극복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노진규기자 jgroh@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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