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러리맨에게 승진은 핵이다. 남들보다 처지면 알아주지 않는 세상이 원망스럽다. 성공한 샐러리맨에겐 공통점이 있다. 일에 죽기살기로 매달린다. 사생활은 아예 포기한다. 그러나 그렇게 다가선 정점에서 문득 돌아보면 세상은 저만치 앞에 가고 있다.
우리투자증권 IB사업부장 정영채(鄭永埰·43) 상무는 첫 직장인 대우증권에서 자금부장을 서른넷에 맡았다. 외환위기가 닥친 1997년 초였다. 그룹이 망하고 나라 전체가 혼돈에 빠졌다. 이른 아침 집을 나서면 귀가는 새벽 3~4시였다. 너무 힘들어 죽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그러나 지금 회피하면 평생 도망다녀야 할 것만 같아 독을 품고 일했다. 그렇게 일한 덕에 그룹은 망해도 회사는 살아남았다.
대리까지는 언제나 특별고과를 받았다. 대리를 달고 배치된 자금부에는 진급 못한 고참들이 남아 있었다. 부서장은 고참에게 좋은 고과를 주는 대신 그는 승진시켜 주지 않았다. 그때 깨달은 게 있다. '세상은 자기의 의지와 관계없이 상황이 아니면 안된다'는 것이었다.
오기가 생겼다. 나 아니면 회사가 돌아가지 않게 만들자고 작심했다. 그렇게 된 후에 진급을 하라면 그때 회사를 떠나리라고 마음먹었다. 증권가는 분초를 다투는 정보의 전쟁터다. 모든 것을 걸고 일에 매달렸다. 선배들을 부하직원으로 제치고 부서장을 달았다.
그가 보는 우리 증권업의 미래는 밝다. 종합금융으로 최적의 경쟁력과 환경을 갖추고 있다. 자본축적도, 원스톱 금융서비스를 제공할 인적 자원도 늘어가고 있다.
기업공개가 전공이다. IB(투자은행)사업이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의미한다면 기업공개(IPO)는 자녀를 결혼시키는 일로 비유한다. 국내 굴지의 카드사와 식품회사 등을 시리즈로 상장했다.
어울려 놀기를 좋아한다는 그답게 후배들에게도 재미있게 일하라고 권한다. 즐기고 논다는 생각으로 일하라고 한다. 그렇다고 대충대충 하라는 말은 아니다. 월급쟁이처럼 일하지 말고 내 사업으로 여기라고 한다. 금융업은 많이 뛴 만큼 수익도 많다. 최근에는 미화 100만 달러를 넘는 고액연봉자도 많다. 몸뚱아리 하나 투자해서 이만한 수익을 받는 사업이 어디 있느냐고 한다.
임원이 된 후 사표를 냈다. '열심히 일했기에 이제 먹고 놀아도 월급을 줄 것'이라는 주위의 부러움이 떠나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했다. 과거의 모습이 오늘을 가린다면 더이상 할 일도 없고 진전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를 해보자며 외국 비행기를 탔다. 그러나 4개월만에 생각을 고쳤다. 공부는 늦은 선택이었다. 잘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졌다. 마침 우리증권에서 불렀다.
대구토박이로 부인과 함께 경북대사범대부설고를 나왔다. 대구에 눌러 살려고 초년 시절 대구지점을 자청, 4년여를 근무했다. 그때만 해도 대구는 활기가 남아 있었다. 기업공개 전문가인 그가 보기에 대구는 자본을 끌어당기는 산업의 유치가 급선무다.
술은 일상생활로 여긴다. 딸 아들 두 자녀에겐 공부보다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인간성이 좋아야 밥을 굶는 일도 없고 어려움이 닥쳐도 헤쳐 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
서영관 논설위원 seo123@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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