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선거 때문에…" 지역 정치권 '고속철 도심통과' 손놨나?

경부고속철도 대구 도심통과 구간 철로변 정비 사업이 어떻게 돼갈까?

지하화다 지상화다 15년 논란 끝에 2004년 11월 대구시는 낙후된 철로변 정비를 전제로 지상화에 동의했다. 철로변 정비 구간은 서구 상리동~수성구 만촌동 간 11.5km. 철로변 양쪽에 각각 도로 10m, 시설녹지 10m를 만들어 철로변을 아름답게 한다는 것. 물론 방음벽과 입체교차 연결도로도 포함됐다.

이같은 철로변 정비 사업에 들어가는 돈은 모두 8천47억 원. 지하화의 경우 1조7천558억 원이 들어가나 지상화 할 때 주변정비사업까지 포함해도 1조4천525억 원밖에 들지 않아 건교부와 한국철도시설공단으로서는 무려 3천33억 원의 예산을 절감할 수 있었다.

때문에 16대 국회 말기인 2003년 말 지하화가 대세이었을 때 건설교통부와 한국철도시설공단은 "지상화에 동의하면 주변정비사업 등에 1조 원까지 투입할 수 있다."는 입장을 국회 건교위에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17대 국회에 들어 주변정비사업비는 8천47억 원으로 줄었고, 최근 기획예산처는 이마저도 축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다른 지역과의 형평성 문제를 빌미로 대구 도심통과 구간에 들어가는 예산을 더 줄여보자는 속셈이다.

◆1조 원에서 8천억 원으로=16대 국회에서 대구 도심통과구간은 지하화가 대세였다. 당시 건교위원이던 백승홍·박승국 두 국회의원이 지상화에 대해 "턱없는 소리"라고 잘랐기 때문이다.

지상화로 변경 가능성이 보인 것은 16대 말기인 2003년 말. 대전에서 철로변 주변정비사업을 전제로 지상화 동의를 받은 한국철도시설공단은 대구에도 도로, 시설녹지 등 철로변 주변 사업을 포함한 지상화안을 국회에 갖고와 협조를 요청했다.

당시 건교부와 한국철도시설공단이 박승국 전 의원에게 제시한 금액은 9천200억 원. 박 전 의원은 1조 원으로 늘리면 대구시민에게 지상화를 설득해보겠다며 정부와 막후 협상을 벌였다. 일부 개통된 고속철도를 타 본 결과 지상화해도 큰 문제가 없고, 오히려 지하화 할 경우 대구 이미지를 훼손할 수 있다는 판단도 박 전 의원이 했다.

도로, 시설녹지는 물론 소공원, 대규모 주차장 시설 등 내용이 담겨 있었다.

17대 총선에서 공교롭게도 박승국, 백승홍 두 의원은 모두 국회에 입성하지 못했다. 이후 17대 국회와 대구시에서는 지상화 의견이 조금씩 표출됐고 건교부가 주변정비사업비 8천47억 원을 제시하자 대구 지역구로선 유일한 건교위원이던 안택수 의원 등이 이를 수용했고, 대구시도 동의해 지상화로 결정됐다.

1조 원이 될 수 있었던 돈이 8천47억 원으로 2천억 원 가량 줄어드는 순간이었다.

◆그나마 못 주겠다는 기획예산처=기획예산처는 현재 "고속철도변 정비 사업은 본선사업과 직접 관련 있는 횡단 육교 등으로 최소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대전·대구시가 요구하는 철도변 정비사업은 도심 재정비 사업 성격이며 서울 광명 김천 부산 등 여타 도시에서 주변정비 사업을 한 사례가 없어 좋지 않은 선례가 될 우려가 있다는 것.

이같은 정부의 태도 변화에 대해 박승국 전 의원은 "국회와 대구시가 타이밍을 놓쳤다."며 "건교부가 1조 원 안을 들고 매달릴 때 분명하게 못 박지 못해 정부 측에 주도권을 넘겨줘 버렸다."고 지적했다.

◆정비사업 필요하다는 한국철도시설공단=한국철도시설공단은 15년 논란 끝에 지상화로 결론나자 대구시와 정치권이 무척 고맙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특히 지상화로 사업비 절감과 함께 터널방재 및 안전 문제, 유지관리 용이 등 지하화의 단점이 해소됐다고 보고 있다.

물론 공단 측은 대구시가 지상화에 동의한 것은 철도변 정비가 전제임을 분명하게 알고 있다. 철도변 정비로 슬럼 지역의 환경이 크게 개선돼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할 것으로 대구시가 기대한다는 것.

그래서 기획예산처가 돈을 조금 아끼려다 대구시민의 거센 저항에 부딪히면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꼴'이 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물러설 수 없다는 지역=대구시는 기획예산처의 입장에 대해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다. 한 관계자는 "정비사업을 하지 않는다면 대구시의 동의 자체가 원천 무효가 되는 것"이라며 "그러면 지하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권도 반발했다.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은 "8천47억 원을 주변 정비사업에 투입해도 3천33억 원이 남는 상황에서 이마저 깎으려 하는 것은 대구시민을 우롱하는 것"이라고 발끈했다. 그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기본계획 변경에서 철로변 정비사업이 포함된 안대로 결론나지 않을 경우 지상화가 새로운 국면을 맞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구 도심통과 구간과 김천·구미역사, 경주역사 건립 등을 포함한 기본계획 변경안이 이르면 이달말 이뤄질 전망이다. 국회와 대구시가 지방선거에만 정신 팔고 있을 것이 아니라 정부의 움직임을 면밀하게 지켜봐야 할 시점인 셈이다.

최재왕기자 jwchoi@msnet.co.kr 박상전기자 mikypar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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